기사내용 메인

▶ 투싼은 이미 잡았다...스포티지 게섯거라! 사전계약 대박 난 토레스
▶ '무쏘 부활' 토레스의 폭발적 인기...무쏘에 답이 있다?!
▶ 단종되고 15년 넘도록 전설로 기억된 SUV 본좌 '무쏘'
▶ 생사를 초월해 쌍용을 구한 불멸의 명차 - 무쏘 이야기!
▶ 치맥 술안주로 최고! 영상으로 보시면 더 맛깔난 '무쏘 이야기'

 

 

▶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쫓다

死孔明走生仲達
사공명주생중달 :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사마의를 쫓다

아마 많은 분들이 '삼국지 연의'에 나온 이 일화를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갈량 사후 촉나라로 쳐들어간 위나라의 사마의가 죽은 제갈량의 모습을 본뜬 나무조각상을 보고 겁을 먹어 황급히 도망갔다는 고사입니다. 사마의가 제갈량을 닮은 나무조각상을 보고 '제갈량이 살아있다'고 착각해서 일어난 일이었는데, 이는 달리 말하자면 사마의가 '제갈량이 살아있다면 절대 이길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갈량은 살아 생전에 워낙 초월적인 활약을 한 덕분에 죽어서까지 사마의를 쫓아 팀의 위기를 구해냈던 거죠. 그런데 이 일화와 비슷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습니다. 죽은 무쏘가 산 현기차를 쫓기 시작한겁니다.

 

 

▶ 죽은 무쏘가 산 현기차를 쫓다

정확히는 쌍용의 신규 중형 SUV '토레스'가 현대와 기아자동차를 바짝 쫓아가기 시작한겁니다. 토레스의 사전계약 첫날 1만 2300대 넘게 사전계약자가 몰려들면서 지난해 현대 투싼 사전계약 첫날 기록인 1만 842대를 제쳤습니다. 물론 사전계약 첫날에 1만 6078대가 계약된 기아의 스포티지나 사전예약 첫날 1만8941대를 기록한 중형 SUV 쏘렌토에 비하면 적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토레스 전까지 쌍용자동차의 사전계약 첫날 최고기록은 17년 전인 2005년, 액티언이 기록한 3013대에 불과했습니다. 그야말로 쌍용자동차와 현기차의 사전계약 인기도는 '클라스'가 달랐던 셈인죠. 그랬던 쌍용이 17년만에 사전계약 최고기록을 갱신하는 건 물론, 현기차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1만대 사전계약'에도 성공하며 현기차를 바짝 뒤쫒고 있는 겁니다. 토레스가 이렇게까지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무었이었을까요? 오랜만에 티볼리 패밀리룩을 벗어던지고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로 돌아온 것이 그 이유 중 하나긴 합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지난 2005년 단종된 무쏘입니다.

토레스의 렌더링 이미지 공개 당시, 사람들이 주목한 건 렌더링 이미지에 함께 있는 무쏘였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자동차 매체들은 앞다퉈 '무쏘 부활'이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내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지난 2020년 엔카닷컴의 '가장 기억에 남는 1990~2000년대 SUV' 부문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차량도 무쏘였죠. 사람들은 어째서 단종된 지 15년도 더 지난 무쏘를 잊지 못하는걸까요?

 

▶ 사람들은 왜 단종 15년 넘도록 무쏘를 잊지 못했나?

무쏘가 처음 등장했던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해답이 나옵니다. 1993년 출시된 무쏘는 그 당시 독일 '벤츠'의 엔진을 사용하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당시 벤츠는 '꿈의 자동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벤츠가 첫 정식수입된 1987년 기준, 벤츠 1대를 살 돈이면 강남 소형평수 아파트 4채를 사고도 돈이 남을 정도로 고가였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만 대를 돌파했던 1991년 기준으로도 국내에 정식 수입된 벤츠는 600여대 남짓이었습니다. 이 당시 벤츠는 상위 1%도 넘보지 못하는 상위 0.06%의 차였던 셈이죠. 그랬던 벤츠의 엔진이 '국산차'에 사용된다는 사실에 소비자들은 열광했습니다. 벤츠의 직렬 5기통 2800cc 디젤엔진은 당시로서는 초월적인 스펙을 뿜어댔고, 무쏘는 공도의 제왕으로 군림할 수가 있었습니다.

'퓨처 지프'(FJ)라는 코드명을 사용했던 무쏘는 엔진 외적인 부분도 '미래적'이었습니다. 애스턴 마틴 등의 디자인을 담당한 영국 왕립예술대학의 '켄 그린리' 교수를 초빙해서 완성된 디자인은, 기존 짚차들의 '박스카' 디자인을 완전히 탈피한 모습이었습니다. 직선적이면서도 매끈한 무쏘의 디자인은 자동차 업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당시 경쟁차종이었던 갤로퍼는 4륜 구동<->2륜 구동 전환을 위해서는 차를 갓길에 대 멈춰야 했지만, 무쏘는 달리는 상태 그대로 4륜<->2륜 전환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고급 세단 차량에나 사용되던 ABS시스템 (브레이크 잠김방지 시스템)을 탑재하는 건 물론, 전자동 썬루프 개폐 시스템까지 탑재한 무쏘는 '최고급 SUV'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코드명 'FJ'라는 이름에 걸맞게 무쏘는 시대를 앞서간 명차였죠. 당시 SUV 시장에서 쌍용은 미쓰비시 파제로를 라이센스 생산한 갤로퍼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1% 대로 추락한 처참한 상황이었지만, 무쏘 출시 이후 쌍용은 시장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벤츠가 과거 S클래스에서 사용하던 직렬 6기통 3200cc 가솔린 엔진 모델과 터보 디젤 인터쿨러 모델을 출시하며 압도적인 마력을 과시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쟁자였던 갤로퍼보다 훨씬 높은 마력과 토크, '벤츠'의 후광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쏘야말로 '대한민국 최고 SUV'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 IMF도 피해간 '지능캐 코뿔소' 무쏘

하지만 무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의 경영에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었습니다. 벤츠의 기술을 도입한 것은 좋았지만 그 대가로 치뤄야 할 로열티는 가혹했습니다. 90년대, 쌍용자동차는 현대자동차보다도 훨씬 많은 비용을 로열티로 지출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차량을 한 대 팔아서 얻는 수익이 훨씬 적다는 것을 의미했고, 재무구조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쌍용도 승용차를 개발해야 한다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열망 탓에, 무려 97년에 터치스크린 네비게이션이 달린 벤츠 기술의 고급 세단 '체어맨'을 만드는 건 성공했지만, 그렇지않아도 불안정한 재무구조와 더불어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되며 쌍용자동차의 적자는 심화되었습니다. 쌍용자동차의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쌍용그룹의 다른 계열사 재정까지 위태로워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IMF 직격타까지 맞으며 결국 쌍용은 대우자동차에 인수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대우에 인수된 이후 무쏘는 '정점'을 찍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워낙 'SUV 본좌' 이미지를 확고히 굳힌 것과 더불어, 불경기에 소비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영리한 트림구성을 선보인 덕분이었죠.

쌍용은 자동차세를 65000원만 내면 되는 7인승 밴 모델을 출시하는데 이어, 아예 화물차로 분류돼 자동차세를 28500원만 내면 2인승 밴 모델을 선보이며 IMF로 지갑이 가벼워진 소비자들을 적극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불편한 꼼수가 숨어있기는 했습니다. 특히 2인승 밴 모델을 구입해 저렴한 화물차 세금을 내면서 , 뒷좌석에 시트를 설치해서 사실상 5인승 SUV로 사용하는 '꼼수' 덕분이었죠. 이러한 트림구성과 과거의 명성에 힘입어 무쏘는 99년과 2000년 2년 연속 국내 SUV 판매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2001년에는 95년에 도로교통공사에 판매된 무쏘 차량이 88만 km 무보링 주행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무쏘를 '명차'로 기억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 아직 한 발 남았다...무쏘의 마지막 회광반조 '무쏘 스포츠'

그렇지만 무쏘는 점점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벤츠 엔진'의 무쏘가 풀체인지 한번 없이 1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는 동안, 경쟁자들은 기술개발을 통해 '벤츠 엔진'과의 격차를 좁혀나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기말 무쏘 흥행의 이유였던 2인승 밴 모델의 '5인승 개조' 역시 관련 법안의 개편으로 사실상 금지되면서 쌍용자동차는 또다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쌍용에게는 아직 무쏘가 남아 있었습니다. 화물차 용도의 '2인승 밴'을 승용차 용도로 쓸 수 없다면? 발상을 완전히 뒤집어 승용차 용도의 차를 '화물차'로 만들어버린거죠. 포니 픽업 단종 이후 근 20년만에 대한민국에 부활한 픽업트럭 '무쏘 스포츠'의 등장이었습니다. 기존 무쏘의 2열을 최대한 1열에 붙인 뒤, C필러 뒤로 작은 짐칸을 달아서 탄생한 '화물차' 였기에 당연히 자동차세는 연 28500원에 불과했습니다. 짐칸이 워낙 작았던 탓에 해당 차량을 화물차로 인정할 수 있냐는 논란이 있긴 했지만, 좌우지간 법령에 있는 필요조건은 모두 충족했기에 무쏘 스포츠는 화물차로 인정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무쏘 스포츠는 체어맨을 제외하고 SUV 외길인생 라인업을 선보이던 쌍용에게 '픽업트럭' 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해줬고, 쌍용은 국내 유일의 픽업트럭 제조사로 존재감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무쏘 스포츠로 시작된 쌍용의 픽업트럭 라인업은 이후 쌍용의 몇 안되는 돈줄로 대활약하며 '토레스'가 출시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후 후속 픽업트럭과 중형 SUV 개발이 진행되며 무쏘는 2005년, 무쏘 스포츠가 2006년 단종되며 무쏘는 마지막까지 '풀체인지' 한번 없이 단종되는 수순을 밟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쌍용자동차의 디자인이 '티볼리'와 같은 귀여운 도심형 SUV 스타일로 재편되는 것은 물론, 더 이상 90년대 초 '벤츠 엔진'의 무쏘처럼 타사의 차량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쌍용과, 무쏘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갔죠.

 

▶ 세기말 '무쏘 구세주 전설'...또다시 이 땅에 강림할 것인가!

90년대 초 현대 갤로퍼에 쌍용 코란도가 압살당할 때
90년대 말 회사가 합병되고 IMF로 기업회생절차를 밟을 때
2000년대 초 '주력 상품' 2인승 밴이 봉인당해 상품성을 잃었을 때
쌍용자동차의 무수한 위기 속에서, '무쏘'는 언제나 실패가 없는 히든카드였습니다. '무쏘의 후예'를 자처한 J100 토레스 역시, 사전예약 1만 2천대 돌파라는 쌍용의 최고기록을 세우며 시장에 돌풍을 몰고 올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토레스는 정식 출고 뒤에도 경쟁자들을 이기고 '무쏘의 전설'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차돌박이

shak@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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