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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대상 수상예감!! 전현무가 찰지게 따박따박 읊어주는 차부심 '황금 마티즈' 특별편!

▶ 떠난 줄도 모르고 사라져버린 '레전드' 경차 마티즈

지난 10월, GM이 경차 스파크(마티즈)의 생산을 중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최근들어 경차 시장 '꼴찌'로 추락했던 스파크(마티즈)는 심심하면 생산중단설이 불거져왔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생산 중단식'까지 진행한 것이 확인되면서 마티즈는 티코 때부터 이어져왔던 '대우 경차'의 31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30년'의 역사를 마감하는 현장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다는 점입니다.

30년 넘게 대를 이어 '원팀'에서 뛴 레전드 노장 선수의 은퇴식 치고는 너무나 조촐해보였기 때문이죠. 91년 출시한 대우 티코의 뒤를 이어 '대우 경차'의 31년 역사를 지켜온 마티즈(스파크)의 말년은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캐스퍼나 레이 등의 신흥경차들이 올 한해 치고올라오는 와중에도, 스파크(마티즈)는 나홀로 장기간 판매부진에 시달리다보니 성대한 은퇴식을 하기에는 눈치가 보였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소신발언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마티즈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차였다고 말입니다.

 

#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전차종 판매량 1위' 경차 마티즈

올 2022년, 캐스퍼가 4만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경차 시장의 가능성 자체가 새롭게 재평가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캐스퍼의 이런 대히트에도 불구하고 마티즈가 세운 기록은 넘지 못했습니다.

지난 1998년 4월 1일 만우절에 첫 시장 판매를 개시한 마티즈는 거짓말같이 8만대 이상 판매량을 기록하며 그 해 '국내 자동차 연간판매량 1위' 기록을 달성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마티즈 덕분에 대우자동차는 무려 25년만에 현대를 제치고 '연간 판매량 1위' 차를 만든 자동차 제조사가 되는 짧은 영광을 얻었죠.

물론 마티즈의 성공에는 IMF의 영향이 적지 않았습니다. 98년 당시는 IMF 후폭풍으로 국민소득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음은 물론, 자동차 금리 자체가 20% 수준에 달하던 시절이었죠. 그 시국에 마티즈는 '최고 트림'이 535만원으로 저렴한 것은 물론, 각종 경차 혜택도 받을 수 있었죠.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사실은 마티즈가 '후발 주자' 였다는 점입니다.

사실 IMF 이후 국내 경차시장은 97년에 출시한 현대 아토스가 휘어잡고 있었습니다. 아토스는 비록 경차긴 하지만 4기통 엔진을 사용하고 경차 규격 한계까지 헤드룸을 늘려 비교적 넓은 실내공간을 자랑했고, 97년 말의 IMF이후 그야말로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습니다. 실제로 마티즈 출시 직후, 98년 상반기까지 국내 자동차 전차종 판매량 1위는 아토스의 차지였습니다. 하지만 마티즈에게는 시장을 선점한 아토스를 저격할 두 가지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주행 성능'과 '디자인' 이었습니다.

 

# '이탈리아 차'가 될 운명이었던 마티즈

마티즈는 출시 초기부터 동그란 헤드램프와 전면 라인이 슬쩍 봐도 '귀엽다'는 느낌을 주며 상당한 디자인적인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디자인은 대우가 자체 개발한 디자인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현대의 포니를 디자인했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설립한 디자인 회사 '이탈디자인'이 만든 디자인이었죠.

이탈디자인은 (국내에서는 흔히 피아트 500으로 알려진)피아트 친체퀜도 500의 후속 모델로 생산할 것을 상정하고 컨셉트카를 개발한 뒤 피아트와 접선했지만, 어째서인지 피아트의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 했습니다. 한편 모터쇼에서 이탈디자인의 컨셉트 카를 본 대우자동차는 곧바로 생산 계약을 맺어버립니다. 일반적으로 차량의 설계나 성능에 디자인을 맞추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디자인을 '고정' 시킨 채 차량의 요구스펙을 충족시키는 '탑 다운' 방식으로 개발하다 보니 당시 대우 연구진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야사가 전해져옵니다.

대우의 빠른 결단으로 생산에 들어간 마티즈의 디자인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엄청난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피아트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마티즈가 시장에 출시되자마자 1000대를 수입해 간 데 이어, '98년 최고의 경차'로 선정했죠. 이탈리아에서도 인정할만큼 디자인적인 완성도와 매력이 높았다는 증거고, 미적거리다가 이 디자인을 놓친 피아트 입장에서는 꽤나 배가 아팠을 겁니다. 하지만 마티즈는 여기에 '한 가지 무기'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컬러'였죠

# '문화'로 번진 '황금 마티즈' 쇼크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차량 소비자들은 흰색과 검은색의 무채색 차량을 매우 선호합니다. 특히 지금보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90년대에는 더더욱 그러했죠. 하지만 마티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황금색'을 메인 색상으로 내세웠습니다. 초창기 이탈디자인의 컨셉트카 역시 '흰색'이 베이스가 되는 차량이었는데, 다짜고짜 '황금색'을 국내 최초로 '메인 컬러'로 삼은 것이죠. 이 무모해보였던 컬러선정은 '신의 한 수'가 되었습니다.

마티즈 자체가 뛰어난 상품성으로 말미암아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가운데, '황금색' 컬러가 가장 많이 판매되었던 겁니다. 당시 마케팅 전문가들은 'IMF로 사회 분위기가 어두운 가운데, 화사한 컬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이 황금 마티즈가 워낙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보니 대형 세단 '그랜저'역시 황금 색상을 출시하는 등, 그야말로 마티즈의 '황금색'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덧붙여 이 황금 마티즈로 인해 생겨난 한 가지 기상천외한 문화가 있었는데요... 어설픈 자는 살아남지 못했던 세기말의 문화충격을 아래 영상으로 느껴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오징어 게임? 라떼는말야...폭력과 유혈이 난무하던 세기말 '마티즈 게임'의 공포

 

# 야! 람보르기니! 포풍경차 마티즈가 간다! 마티즈의 폭.풍.질.주.

마티즈의 주행 성능 역시 아토스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해준 강점이었습니다. 아토스는 '4기통 엔진'을 장점으로 홍보하며 마티즈의 '3기통 엔진'은 성능이 부족하다는 뉘앙스로 저격했었습니다. 하지만 한 자동차 잡지사에서 무작위로 '테스트단'을 선정해 2만km 주행 테스트를 한 결과, 주행성능이 우수한 건 오히려 3기통 마티즈 쪽이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사실 아토스는 적은 배기량의 엔진을 4기통으로 만들기 위해, 엔진 실린더의 크기 자체를 줄였습니다. 그 덕분에 '4기통 엔진'을 만들수는 있었지만, 실린더 4개 각각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그만큼 폭발력이 낮아졌고, 이는 출력의 저하를 의미했죠. 하지만 마티즈는 3기통 엔진이었지만 아토스에 비해 큰 실린더 크기로 더 높은 출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데다가 공차중량 또한 아토스보다 적었기 때문에 보다 민첩한 기동이 가능했습니다.

차급에 비해 기동력이 좋았던 마티즈는 한 가지 '무모한 도전'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하이패스 기술을 개발중이던 LG의 주선으로, 람보르기니와 '공도 레이스'를 벌이게 된 거죠. 룰은 간단했습니다. 구리에서 출발해 판교까지 도착하는 30km 구간을, 다른 일반 차량 통제 없이 람보르기니와 마티즈가 정면 승부를 벌였던거죠. 물론 한 가지 작은 차이는 존재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하이패스 없이 톨게이트 창구에서 멈춰서 요금을 내고, 마티즈는 하이패스를 사용하는 조건이었죠. 이 당시 80%가 넘는 네티즌들이 마티즈의 우승을 예상하며 뜨거운 응원을 보내줬었는데, 과연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 람보르기니 게섰거라~~!! 람보에게 도전장 던진 마티즈...그 결과는?!

 

# 마티즈의 빛과 그림자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마티즈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차였습니다. 특히 마티즈 페이스리프트(마티즈 2)때부터 도입된 CVT미션의 악명은 유명합니다. 원래 이 변속기는 마티즈보다 낮은 배기량의 엔진에서 사용되도록 설계된 미션이지만, 대우는 무슨 베짱인지 이 변속기를 그대로 사용했고, GM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탓에 주행 중 CVT 벨트가 엔진 출력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는 사고가 빈번했고 그렇게 될 경우 '1단 주행'만 가능해져 안전상에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인천대교에서 이 'CVT문제'가 발생한 마티즈가 차량을 갓길로 빼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던 바람에, 그 마티즈를 피하려던 버스가 다리 아래로 추락해 14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죠. 물론 해당 사고는 '1단 주행'으로 마티즈를 갓길로 옮기지 않은 운전자의 책임이 절대적이었지만, 우선적으로 해당 설계결함을 방치하던 마티즈와 GM 이미지가 크게 하락했습니다. 후기형에 들어오면서 이 '미션 과열 문제'를 줄여보겠답시고 취한 조치는 고작 엔진룸으로 통하는 '환기구'를 하나 더 뚫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마티즈가 이렇게 오랫동안 베짱을 부릴 수 있었던 건 아토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뒤 한동안 마티즈가 경차시장을 독식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아토스가 마티즈에게 밀리는 걸 확인한 현대는 경차 생산을 기아에게 넘겨 기아는 '비스토'를 생산해 추격했지만, 마티즈를 따라잡지 못하는 한편, 경차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기미가 보이자 결국 현대와 기아는 한동안 경차 생산을 포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경쟁자를 압도하던 마티즈의 황금시절은 길지 못했습니다. 경차 엔진배기량 규정이 변하면서 기아에서 1000cc엔진으로 무장한 '모닝'을 출시한 이후, 마티즈는 단 한번도 연간판매량에서 모닝을 이겨보지 못했습니다. 마티즈 역시 '스파크'로 이름을 바꾸고 파격적인 디자인 변신과 마케팅을 총 동원했지만 모닝의 상품성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죠. 심지어 모닝과 레이, 마티즈(스파크)가 경차시장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는 사이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소형 SUV' 전성시대를 연 티볼리의 등장이었죠. 티볼리의 등장 이후 국내 소형 suv 시장 자체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경차의 판매량은 하향일로를 걷게되고, 가뜩이나 같은 경차 카테고리 안에서도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던 마티즈(스파크)에게 경차 시장의 축소는 더더욱 치명적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마티즈는 국내 최초로 '핑크색 컬러'를 도입하거나, 일명 '닭다리'라고 불리는 수동식(크랭크식) 윈도우 레버를 사용하는 등 극단적인 원가절감을 통해 '1000만원'을 넘기지 않는 방법 등으로 경쟁력을 갖추려 노력했지만 모닝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캐스퍼'의 등장 이후 모처럼 경차시장이 확대되는 와중에도 '판매량 꼴찌' 굴욕을 당했습니다. 결국 단 한번도 모닝을 이기지 못한 한을 품고, 마티즈는 생산이 종료되며 한 많은 자동차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티즈가 떠난 자리에는 한 가지 유산이 남아있었습니다.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마티즈는...!

그건 바로 창원공장의 존재입니다. 사실 창원공장 자체가 대우자동차가 '국민차 프로젝트'를 가동하며 '경차'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지었던 공장입니다. 대우자동차는 마티즈의 단종 이후 창원공장에서 2세대 트랙스를 생산할 계획을 밝혔는데요. 과연 마티즈의 기운을 품고 태어나게 될 2세대 트랙스는, 창원공장을 다시한번 1등 자동차 공장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차돌박이

shak@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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