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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天已死 : 창천이사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黃天當立 : 황천당립
누런 하늘이 이제 일어난다!

'삼국지' 소설의 시작이 되는 황건적의 난! 그 황건적이 외쳤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죠. 그런데 한국 자동차 업계에 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트랙스 2세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흥행 돌풍입니다. 특이하게 ‘노란색(어반 옐로우)’를 메인 컬러로 잡은 트랙스 크로스오버!

사흘만에 사전계약 1만대를 돌파하며 쉐보레 브랜드 사상 최대의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특히 타사의 동급 소형 SUV 코나와 셀토스가 모두 가격을 인상한 가운데, 파격적인 ‘풀옵션 2천만원 대’ 가격책정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한국 자동차 업계에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정확히 25년전, 1998년에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었죠. 트랙스와 마찬가지로 노란색(황금색)을 메인 컬러로 잡고 출시한 뒤, 전 차종 판매량 1위를 기록했던 전설적인 차! 바로 한국 GM의 전신인 대우자동차가 만들었던 1세대 마티즈였죠.

그런데 25년만에 다시 ‘황건적의 난’으로 현대를 위협하고 있는 트랙스가 사실 마티즈의 ‘직계 후손’ 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007년, GM대우는 2세대 마티즈의 후속작이 될 3세대 마티즈의 컨셉트카 3종을 선보였습니다. 각각 ‘비트’, ‘그루브’, ‘트랙스’라는 이름이었죠. 이 중 ‘비트’는 차세대 마티즈로 확정돼 훗날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스파크)로 출시되었고, 컨셉트 카 ‘트랙스’의 차급을 키워 ‘소형 SUV’로 출시했던 것이 1세대 트랙스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25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마티즈와 트랙스의 사이에는 단순히 혈연(?) 관계 외에도 세 가지의 공통점이 더 존재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세 가지 공통점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오늘의 주제, ‘황건적 평행이론’입니다.

▶첫번째 평행이론 : 창천이사

파란 하늘은 이미 죽었다! 삼국지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여기서 ‘파란 하늘’은 부패한 한 왕조를 의미했습니다. 십상시가 폭정으로 백성들을 수탈한 끝에, 백성들의 경제력이 파탄난 것이 황건적이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죠. 한국 자동차 업계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8년 마티즈 돌풍이 일어났을 때에도, 트랙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2023년 현재도 국가경제 상황에 시퍼런 ‘음봉’이 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배경을 자세히 파고들어볼수록 단순히 ‘경제위기’라는 한 마디로 끝내기 어려울 만큼 1998년과 2023년의 자동차 시장 상황이 일치합니다. 무려 7가지나 말이죠.

1998년과 2023년은 25년이라는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①경제위기, ②환율급등, ③자동차 할부금리 폭등, ④경쟁 차량 가격 인상, ⑤국민소득 감소, ⑥자동차 등록대수 감소, ⑦신차구입 세금감면 등 7가지 상황이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황건적, 그러니까 마티즈와 트랙스가 ‘가성비’를 앞세워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죠.

 

▶두번째 평행이론 : 황천당립

누런 하늘이 일어나리라! 이것 또한 마티즈와 트랙스의 두번째 공통점입니다. 두 차량 모두 드물게도 ‘노란색’을 메인 컬러로 설정해 각종 CF나 카탈로그 등에서 활용했죠. 특히 마티즈의 경우 국산 자동차 중 최초로 ‘황금색’을 메인 컬러로 삼은 자동차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내 자동차 업계는 무채색 컬러가 강세를 보이지만, 예외적으로 마티즈는 ‘황금색’이 가장 많이 팔리는 기현상을 보이며 98년 전 차종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최초이자 최후의 ‘연간판매량 1위 경차’ 전설을 남겼습니다.

한편 트랙스 크로스오버 역시 카탈로그나 티저 CF에서 ‘노란색(어반 옐로우)’를 메인 색상으로 본격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쉐보레가 SUV 차종에 ‘노란색’을 메인 컬러로 도입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물론 트랙스의 경우 마티즈처럼 ‘노란색’이 가장 많이 팔리지는 않는 상황입니다. 실제 계약은 흰색 트랙스 차량을 가장 선호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최근 타사 SUV 차량들이 밀리터리풍의 어두운 녹색 계열을 메인 컬러로 선보이는 경향이 짙은 가운데, ‘노란색 트랙스’는 소비자들에게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줄 수 있었던 건 분명합니다.

트랙스는 왜 ‘노란색’을 다시 메인 컬러로 사용한 걸까요? 정확한 이유는 GM만이 알고 있겠습니다마는, 조사 끝에 한 가지 재미있는 연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 트랙스가 '간판색'을 노란 색으로 만든 이유는?! (클릭시 재생됩니다)

물론 한국 GM이 이러한 연구 결과를 고려해 신형 트랙스의 메인 색상을 노란색으로 선택했을지는 미지수지만, 초록색 계열의 경쟁 SUV들 사이에서 ‘노랑색’의 트랙스가 확실히 눈에 띄는 인상을 전해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세번째 평행이론 : 용감한 3형제

‘황건적’을 탄생시키고 중원을 누비게 만든 황건적의 심장! 그건 바로 장각, 장보, 장량 3형제였죠. 2세대 트랙스와 1세대 마티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차량 모두 ‘3기통 엔진’을 사용한다는 얘기죠.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이 3기통 엔진을 가지고 경쟁사의 ‘4기통 동급’ 차량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세대 마티즈가 3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나왔던 시절, 엔진 실린더 수는 ‘짝수’인 게 당연하다는 게 보편적인 국내 정서였습니다. 엔진 실린더 수가 짝수여야지 폭발 행정에서 나오는 관성에 따른 진동을 상쇄해 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죠. 그래서인지 현대는 경차 ‘아토스’를 출시하면서 좁은 엔진룸에 4기통 엔진을 넣기 위해 실린더 크기를 줄여가면서까지 ‘4기통 엔진’을 고집했습니다. 마치 구세대적 질서와 전통을 중시하는 삼국지의 ‘관군’ 처럼 말이죠.

하지만 ‘관군 스타일’ 4기통 엔진을 탑재한 아토스는 ‘황건적 스타일’로 파격적으로 3기통 엔진을 장착하고 출시한 마티즈와의 경쟁에서 밀려났습니다. 무리하게 실린더 크기를 줄인 탓에 상대적으로 초반 가속력과 운동성능이 마티즈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이죠.

2세대 트랙스 역시 ‘준중형’ 급으로 덩치를 대폭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1.2리터 터보 3기통 엔진’을 장착해 출시했습니다. 반면 경쟁 SUV인 셀토스나 코나의 경우 모두 4기통 엔진을 사용하죠. 다시금 4기통 현대(+기아) vs 3기통 GM(대우)의 매치업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트랙스 제원 공개 초기에는 출력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많았으나, 현재까지 각종 매체의 시승기에서는 주행감성 및 주행성능에 대해서도 ‘가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는 여론이 우세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황건…아니, GM의 노림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 GM이 달라졌어요

사실 ‘3기통 엔진’을 사용한다는 건 처음부터 페널티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장 ‘4기통’과 비교해 봤을 때, ‘뭔가 부족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GM이 이렇게 처절하게 엔진 다운사이징을 했던 건, 과거 ‘1세대 트랙스’의 흥행 참패에서 교훈을 얻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됩니다.

과거 1세대 트랙스의 경우, 국내 최초로 ‘소형 SUV’를 선보이며 출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동급 준중형 suv와도 큰 차이가 없는 가격책정 탓에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죠.

하지만 이번 2세대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엔진 배기량을 줄인 대신, 파격적인 기본 트림 가격과 더불어 기본 트림에도 상당한 주행보조기능을 탑재했습니다. 특히 선호도가 높은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도 기본트림부터 선택할 수 있어 납득할만한 트림 구성을 보여주죠. ‘경제적 난세’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솔깃할만한 트림 구성을 선보여 지지를 받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사실 트랙스 2세대가 이렇게 파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칠수 있는 데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25년 전의 정신적 조상님, 마티즈 덕분이었죠.

대우의 ‘황금 마티즈’에 이어, 25년만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뒤집고 있는 ‘2세대 황건적’ 트랙스 크로스오버! 트랙스가 몰고 온 ‘노란빛’은 앞길 캄캄한 흙먼지일까요, 어두은 하늘을 밝게 비추는 찬란한 햇살인까요?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흥행 돌풍이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차돌박이

shak@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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