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2 유현태
지프 글래디에이터 3.6 가솔린 Rubicon 을 장기간 시승했다. 지프의 아이콘과 같은 '랭글러'를 기반으로 한 픽업트럭이다. 그래서 전면 디자인만을 바라보면 지프 랭글러와 동일한 외모를 보여준다. 대신 측면을 바라보면 체급이 다른 덩치를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역시 랭글러와 같은 전폭을 지니고 있지만, 전장은 72cm가량 연장된다.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지프가 바로 랭글러이기 때문에, 글래디에이터의 반전적인 실루엣과 전장은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듯 하다.
픽업트럭이라는 장르가 국내에서 보편적이진 않다. 실제 도로교통법으로도 '화물차'에 속하는 분류이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지금은 정식 수입 차량으로 콜로라도와 레인저, 시에라, 곧 출시될 국산 픽업 트럭 2종을 추가하면 그 폭이 넓어지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주요 시장은 아니라는 점, 대부분 북미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된 사례였다. 일반적인 SUV에 비해 더욱 크고 무거운 용량의 짐을 적재할 수 있고 관리도 편하지만, 한국은 유통업이 워낙 잘 발달되어 있으니 일반 대중들에겐 필요가 없는 차종인 셈이다.
다만 글래디에이터는 '랭글러'기반의 픽업트럭이다. 원래 랭글러라는 정통파 SUV부터가 국내에서 대중적인 차량으로 각인되지는 않았다. 대신 소수의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차종이다. 때문에 글래디에이터는 태생부터 다수 소비자의 선택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 목적과 형식이 조금은 다를지라도, 랭글러의 공간성을 확장시킨 '롱바디' 모델로 간주해 볼 수도 있다. 아무렴 존재 자체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는 차종이다. 북미 자동차 시장을 상징하는 '픽업트럭'과 SUV의 대명사 '지프'를 있는 그대로 합성시킨 글래디에이터였다.
앞서 서술한 내용처럼 지프 랭글러의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받은 전면 디자인이다. 7대륙을 상징하는 7슬롯 그릴, 전구를 그대로 박아둔 듯한 원형의 헤드 램프가 전형적이다. 물론 광원은 LED 방식, 차폭등과 안개등까지 마련되어 있다. 엔진룸과 프런트 펜더가 철저하게 분리된 디자인이 클래식함을 강조하여 준다. 돌출된 범퍼와 경첩식 후드, 접이식 앞 유리 등 특징적인 요소들이 시선을 이끈다. 시승 차량이 해당되는 '루비콘' 은 오프로드 특화 사양이다. 펜더와 범퍼의 플라스틱 소재가 그대로 노출되며, 전용 타이어 세팅으로 전고가 높아진다.
측면에서 바라보는 글래디에이터의 덩치는 위압감까지 느껴지는 수준이다. 원래 리어 도어 패널과 펜더의 모서리 라인이 맞닿아야 하지만, 그 거리가 상당히 늘어나 보인다. '바디 온 프레임' SUV는 기존부터 축거가 길게 설정되는데, 바디 프레임을 연장하니 축거는 굉장히 길게 된다. 물론 리어 오버행도 연장되며, 수직으로 구분되어 있는 캐빈 룸과 적재함의 실루엣에 터프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높은 지상고 또한 프레임 바디의 특징, 휠 사이즈가 17인치에 불과하나 오프로드 타이어의 직경이 굉장히 넓다. 그러면서도 휠 하우스의 잔여 공간이 많이 남는다.
그런 여유로움으로 인해 누가 보아도 오프로드에 특화된 SUV의 모습이 된다. 뒷모습은 여느 픽업트럭이 그렇듯 밋밋하다. 하지만 원래 랭글러가 그런 디자인을 추구해왔고, 그저 스페어타이어가 생략된 느낌일 뿐이다. 지프 로고가 각인된 테일게이트와 수직형 테일램프로 구성된다. 그리고 전면부에 비해 지상고가 더욱 높아 보이는 인상이다. 차체 전폭까지도 넓게 디자인되어 있으니 뒤에서 바라볼 때는 그저 덩치 큰 픽업트럭이 된다. 두껍게 차량을 보호하고 있는 플라스틱 범퍼가 전면부와의 통일감을 준다.
대시 패널 디자인도 랭글러와 동일하다. 소형 LCD 스크린을 포함하는 아날로그 클러스터와 8.4인치 유커넥트 센터 모니터로 인터페이스가 구성되었다. 요즘 풀스크린 클러스터 차량도 많지만, 역시 다이얼 계기판만의 감성이 있다. 센터 스크린도 세로 길이가 높다 보니 넉넉한 면적을 보여준다. 센터페시아에는 공조장치와 관련된 많은 버튼들이 있다. 경첩식 도어를 채택하면서, 창문 버튼까지도 센터페시아에 있다. 그 외에는 트랜스퍼 케이스, 디퍼렌셜, 스태빌라이저를 제어할 수 있는 다양한 버튼이 있고, 별도의 기어 레버까지 존재한다.
때문에 기어 레버가 총 2개다. 하나는 센터 디퍼렌셜을 제어하는 역할이고, 하나는 주행 변속기이다. 변속기 상단의 '글래디에이터' 아이콘에 섬세함이 느껴진다. 그 외 컵홀더나 2층 구조의 센터 콘솔 등 간결한 구성을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스티칭 패턴과 알루미늄 등 다양한 소재가 혼합된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시트는 생각보다 편안한 착좌감이고, 수동식이긴 하지만 요추받침도 조절이 가능하다. 가파른 경사로 솟아있는 전면 유리와 A 필러의 손잡이, 서클 타입 에어벤트 등 지프만의 감성 요소가 다양한 편이다.
2열이다. 우선적으로는 공간의 여유가 느껴지는 편이다. 보기보다 레그룸의 여유가 있고, 수직형의 C필러는 당연 개방적인 헤드룸을 제시한다. 천장은 분리형 하드탑 방식이다 보니 천장 구조가 다소 복잡해 보이긴 한다. 캐빈 프레임에 조명과 스피커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낭만적인 느낌이다. 에어벤트와 파워 아웃렛 등 편의 장비가 있고, 2열 시트 하단과 뒤편에도 잔여 수납공간이 있다. 뒷유리는 슬라이딩 방식으로 일부분 개방된다. 적재함은 전폭이 넓게 짜여 있어 활용성이 좋았다. 순정 커버와 테일게이트로 수납공간이 보호된다.
언제든 경첩식 도어를 열 때면 지프 고유의 감성이 느껴진다. 글래디에이터의 높은 지상고는 차량에 타고 내릴 때 크게 체감된다. 시동을 걸면 보이는 클러스터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경첩식 후드와 네모난 사이드미러가 유니크한 감각을 제시한다. 국내 출시된 글래디에이터는 3.6L 급 가솔린 엔진으로만 운영된다. V6 형식에 자연흡기로 284Hp의 최고출력과 36.0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공차중량이 2305Kg이다. 변속기가 8단 토크컨버터로, 공인 연비를 6.5Km/L에 인증을 받았다.
가솔린 엔진인 만큼 터프한 외모에 비해 엔진 소음은 크지 않다. 오히려 부드러운 편, 다만 거대한 덩치에 비해 수치상의 토크가 넉넉한가 의문이었다. 우선 비공식적인 제로백이 약 8초에서 9초 미만이다. 그리고 픽업트럭인 만큼 초반 토크가 굉장히 높게 세팅되어 있다. 토크가 강하다 보니 브레이크에서 발을 천천히 떼며 크리핑을 하면, 마치 반클러치를 하듯 부르르 떠는 느낌까지 전달된다. 스탑&고의 개입도 부드러운 편, 결론적으로는 파워가 부족한 느낌은 없다는 의미다. 이후 서술하겠지만 속력을 올려도 출력에 대한 답답함은 크지 않았다.
초반에 강한 토크가 느껴진 이후로는 강력하게 밀어주는 느낌이 감소한다. 그저 엑셀을 깊게 밟으면 넉넉한 파워가 뒤따라주고, 그렇지 않다면 덩치에 맞는 여유로운 가속감을 보여주었다. 8단 자동 변속기는 그저 부드럽게 따라준다. 어차피 별다른 드라이브 모드가 없고, 저속 기어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한 변속기 세팅의 정답이 정해진 셈이다. 그렇듯 엔진과 파워트레인 세팅은 정말 적절하다. 다만 차량 특성상 엔진룸이 아닌 운전석 뒤쪽에서 들려오는 프로펠러 샤프트의 소음인지, 어떠한 측면이든 정숙한 승차감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그런 소음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기기도 했고, 전반적인 주행감이나 펀치력 자체는 만족스러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알파인'에서 제조한 프리미엄 오디오가 탑재되어 있기도 하다. 참고로 글래디에이터는 바디 온 프레임 타입이지만, 서스펜션 구조가 전부 독립 현가 방식이다. 멀티링크와 'FOX'사의 댐퍼로 튜닝되어 있어 노면 상태에 더욱 정교하게 대응할 수 있다. 예상보다 댐핑력이 굉장히 강했다. 지상고가 정말 높은 차량이지만 이따금 작은 충격에는 리바운드가 전혀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고속 주행에서도 높은 무게중심으로 인한 불안감이 거의 없었다. 스태빌라이저가 적용된 것 또한, 한층 탄탄한 승차감을 구현해 준다. 리서큘레이팅 볼 방식을 채택하는 스티어링은 유격이 꽤 큰 편이지만, 묵직한 조향감 자체는 마음에 든다. 그런 스티어링 감각과 탄탄한 하체 세팅으로 의외로 안정적인 주행감을 지녔다. 다만 의외라는 것, 급작스러운 회피 기동이나 코너에서는 높은 무게중심과 긴 휠베이스로 인한 롤링이 심할 수밖에 없다. 그 물리적 한계가 예상보다 높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여유롭게 운전해야 하는 차량은 맞다.
또, 휠베이스가 정말 길지만 통상 뒷바퀴 굴림 차량이 그런 것처럼 회전반경이 짧았다. 생각보다 타이트한 선회 감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좁은 골목길도 통행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실제 전장 대비 전폭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기도 하다. 어쩌면 이런 특성은 험로 주행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좁은 길을 보다 쉽게 주파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루비콘' 사양은 오프로드 타이어 및 익스테리어 패키징을 제외하고도, 감속비가 4:1에 달하는 저속 4WD 기어가 탑재된다. 일반 4WD 저속 기어보다 훨씬 강력한 토크를 전달할 수 있다.
다시, 글래디에이터의 트랜스퍼 케이스는 2WD와 4WD 오토, 4WD LOCK과 4WD LOCK 저속 기어까지 총 4단계로 구분된다. 2WD은 뒷바퀴를 굴리며, 4WD 오토는 슬립이 감지되면 순간적으로 센터락을 맞물린다. 능동적으로 네 바퀴에 구동력을 전달하여 트랙션을 확보하는 것이다. 때문에 젖어있는 노면이나 비포장도로에서 활용하면 안전성을 높여준다. 그 외 고속및 저속 4WD LOCK 기능은 오프로드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앞뒤 바퀴에 5:5의 동등한 구동력을 배분한다. 전후륜 디퍼렌셜 기어도 별도로 제어할 수 있는 방식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기능은 전자식 스태빌라이저였다. 앞서 온 로드에서의 안정적인 승차감은 섀시의 롤을 억제해 주는 스테빌라이저의 역할이 크다. 대신 양측 바퀴가 하나의 축에 연결되며 상하 운동에 대한 제약이 생긴다. 그래서 오프로드에서는 전륜 측 바퀴의 자유로운 상하운동을 위해 전자식으로 스테빌라이저가 해제되는 기능을 추가했다. 사실 시승 차량을 가지고 극한의 도로 환경에 다가설 수는 없다. 일반적인 비포장도로는 4WD 오토 모드에서 가볍게 주파 가능하다. 오프로드에서도 탄탄한 바디 프레임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좋았다.
그리고 차체를 두르고 있는 갑옷 같은 바디 클래딩 덕분에 운행에 대한 부담이 더 없었다.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휠 타이어의 위치를 육안으로 쉽게 확인할 수도 있다. 이 또한 낭만이었다. 아무렴 일반적인 SUV들은 비포장도로에서 차체 훼손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데, 글래디에이터는 강인한 바디 스타일이든 고강성 프레임이든 두려움이 확실히 줄어든다. 또, 장기간의 여정에서도 넉넉한 짐을 소화할 수 있는 적재함까지, 참고로 적재함의 최대 적재 하중은 300Kg이며 최대 견인 능력은 약 2.7톤에 달한다.
물론 장거리 주행에서의 피로감은 온 로드 타입 SUV보다 클 것이다. 고속 주행이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고는 해도, 90Km/h가 넘어가면 공기 저항에 의한 미세한 흔들림이 있다. 그로 인해 고속 연비가 크게 개선되지도 않는다. 또, 주행 보조 장비도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정도가 끝이었다. 다만 차량을 일반적인 승용차의 리듬대로 가속하면 역시 또 소음이 유입된다. 그저 운전을 즐겨야 한다. 정숙함을 바라지 않는다면, 주행 질감이나 가속감 자체는 터프한 차체에 비해 훌륭했다.
스마트폰 미러링은 유선 케이블이 있어야 동작한다. 요즘 무선 방식이 대부분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장단점이 있다. 일단 연결 및 반응속도가 정말 빠르다. 무선 안드로이드 오토의 버벅거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터라, 오히려 유선 방식의 즉답성이 더 만족스러운 느낌이다. 케이블만 조금 깔끔하게 정리해 주면 된다. 이 정도인 거 같다. 사실 전자 장비나 편의 장비는 글래디에이터에게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다. 순수한 기계미와 개성적인 디자인이 그 핵심가치일 뿐, 모든 것을 다 갖춘다면 여타 정통파 SUV처럼 1억 원을 호가하게 될 것이다.
글래디에이터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판매되는 차량이 사실상 1세대에 해당한다. 물론 그 이름은 2번째 사용되지만, 1세대 글래디에이터는 1988년에 단종되었다. 그마저도 랭글러가 아닌 왜고니어를 기반으로 한 픽업이었다. 현행 4세대 랭글러, 프로젝트 JL은 겉보기에 구 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경량화'라는 발전 사항이 있었고, 실제 바디와 프레임의 강성을 높이면서 90Kg 이상의 감량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급격하게 늘려놓은 차체에도, 기민하고 완성도 높은 주행감에 부담이 크지 않은 픽업트럭이 된 듯 하다.
지프 글래디에이터 3.6 가솔린 루비콘을 장기간 시승했다. 개성적인 디자인과 겸하는 웅장한 덩치가 인상 깊은 외모였다. 픽업트럭으로 트렁크 공간과 구분되게 된 객실은 오히려 더 안락한 분위기도 전해진다. 생각보다 매력적이었던 주행 질감과 오프로드를 위한 수많은 장비에 이야깃 거리는 끊이질 않는다. 그 목적에 따르자면 소수를 위한 자동차는 맞다.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글래디에이터는 의외로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이따금 식상한 자동차들에 질려있거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누릴 수 있는 패션 카를 원한다면 좋은 선택지이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