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5 정상현
코드명 W222의 6세대 S클래스. 가솔린 엔진과 롱 휠베이스, 스탠다드 익스테리어 조합이 가장 잘 팔린다. 이번 시승차는 그 조건들을 무시한다. 디젤 엔진과 숏 휠베이스, 섹시한 AMG 라인 익스테리어를 품었다. 이 조합은 우리가 흔히 알던 S클래스와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직접 운전하는 메르세데스-벤츠 세단 중 가장 갖고 싶은 차다.
글 l 정상현 편집장, 사진 l 이정현 기자
“차는 벤스지”.
어른들 말씀 틀린 거 없다고 했다. ‘경험의 축적’을 강조한 막강한 화력 앞에서, 삶의 길이가 짧은 우리는 반박할 만한 논리를 찾기 어렵다. 어차피 굴복할 거면 이쯤에서 용어의 정의를 해보자. 여기서 말하는 ‘벤스’란 대개 S클래스를 일컫는다. 거기에는 청나라의 비단처럼 부들부들한 가솔린 엔진이 달려야 하고, 앞뒤 바퀴 사이 거리를 늘여 뒷자리가 넓어야 하며, 품격을 저해하지 않는 스탠다드 익스테리어를 채택한 제품이어야 한다. 이 조합을 내세우고 나면 어른들께 “차는 역시 벤스가 좋다”는 훈수를 듣게 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젊은 층은 대개 반대파에 속하기 마련이다. S가 진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그(어른들)와 100% 같은 길을 걷는 건 싫다. 그런 우리를 위해 메르세데스는 별종(사실은 되려 스탠다드에 가까운) S클래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E클래스와 길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숏 보디라든가 랩퍼가 타도 어울리는 AMG 라인 익스테리어를 제공한다. 아울러 푸르른 자연보다는 본인의 기름값을 중시하는 이를 위한 디젤 엔진도 만든다(심지어 그 디젤은 최근 새로 개발했다). 이 변종 조합을 모두 품은 차가 있다. 오늘의 시승차인 S350d 4매틱이다.
시승차는 2018년 1월 출고했다. 주행거리는 3만1,000km다. 1년에 1만km 살짝 넘게 뛰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윽고 ‘그럴 거면 왜 디젤 샀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 인류를 통틀어 딱 한 사람(최초 출고자)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차의 2대 차주 입장이므로 이윽고 고마움만 남는다. 다행히 현재까지 누적된 평균 주행속도가 32km/h로 시내 위주로 다닌 차는 아닌 듯하다. 줄곧 시내만 다닌 디젤차는 사기 꺼려진다.
숏 휠베이스 모델로서의 장점은 명확하다. 우선 스타일이 더 섹시하다. 비교적 짤막한 보디가 스포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AMG 라인 익스테리어도 여기 일조한다. 지금까지 나열된 키워드들은 S클래스와 상충하는 듯하다. 하지만 어색함보다는 새로움이라는 가치로서 다가온다. 누차 강조하지만 필자가 F세그먼트 세단을 산다면 결단코 숏 휠베이스 버전을 살 것이다. 운동성이 더 좋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
자, 이제부터 나열할 것들은 단점 카테고리에 속한다. 사실 여러분도 짐작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뒷자리 무릎 공간이 롱 휠베이스형에 비해 확연히 작다. E클래스와도 큰 차이 안 난다. 롱 보디의 전동 조절 시트라든가 뒤 선반의 엠비언트 램프도 빠진다. 롱 보디형은 뒷 문을 열었을 때 “우와”하게 되는데 숏 보디형은 그런 감탄사가 생략된다. 다행히 시승차는 시트 표면의 ‘진밤색’ 가죽이 심심함을 상쇄한다. 아울러 햇빛 차단 패키지(진짜 이렇게 기재한다)가 기본 적용, 뒷좌석 리어와 사이드 윈도에 전동식 선블라인드를 단다.
뒷자리를 벗어나면 ‘옵션’에 대한 목마름이 가라앉는다. 멀티빔 LED 헤드램프, 차로 유지 장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기본이다. 서라운드 뷰와 HUD, 압축 도어, 전자동 트렁크 같은 인기 장비도 S니까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13개의 스피커를 포함한 버메스터 음향 시스템과 매직비젼컨트롤 와이퍼(열선까지 깔려 있다)가 끝을 장식한다. 결국 뒷자리 전용은 아니지만 오너드리븐으로서 넘치는 구성을 자랑한다.
엔진은 이전과 같은 배기량의 6기통 3L 디젤. 하지만 V6인 구형과는 완전히 다르다. OM656 유닛으로서 직렬 6기통으로 돌아섰다. 새로운 모듈러 엔진은 실린더 수를 바꾸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최고출력은 286마력, 최대토크는 61.2kg·m이다. 변속기는 9단 자동. 전기형의 7단 자동보다 단수가 늘었다. 기어비를 좀 더 잘게 쪼개었고 순항할 때 엔진 회전은 더욱 느리다. 결국 엔진뿐만 아니라 변속기까지 바뀐 거다. 마이너체인지 모델이지만 많이 달라졌다.
세상을 살다 보면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 일은 으레 자주 생기지 않는 법이다. 한데 S350d를 타면 믿을 수 없는 일을 매일마다 겪을 수 있다. 원한다면 하루에 수 차례도 가능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S350d를 사기 위한 돈을 마련한다. 그 다음 S350d를 산다. 마지막으로 그 차의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끝난다. 내가 시승차의 운전석에 올라 그와 비슷한 일을 치르자 곁에 있던 이정현 기자가 말했다. “진짜 이게 끝이에요?”
너무 조용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정현보다 선배니까 경험이 많은 척해야 한다. 그렇기에 최대한 건조한 어조와 의연한 표정을 곁들여 대답했다. “어, S 디젤은 원래 이래”.
하지만 나조차도 믿기 힘들었다. 정말 조용하다. 기억을 더듬어도 과연 이 정도였나 싶었다. 진동 역시 억제되어 있다. 문자 그대로 ‘억제’다. 함께 끌고 나온 4만km 뛴 S400(3.0L 가솔린)보다 오히려 더 잔잔하다. 거짓말 말라고? 이러면 믿으려나. 블라인드 테스트 한다면 어떤 게 디젤이고 가솔린인지 정확히 맞힐 자신이 없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아직도 짜증나는 걸 보면 내 청력은 여전히 정상인데.
가속은 수치보다 느슨한 감각이다. 0→100km/h 가속 5.8초를 자랑하되 차 안에서 느껴지는 건 7~8초대 같다. BMW 7시리즈 디젤들은 이따금 폭력적인 느낌을 선사하지만 S클래스는 디젤도 품격 있다. 다만 필자 성향(폭력적임)에는 7시리즈 디젤이 더 마음에 든다. 변속기가 물리는 감각도 7시리즈 쪽이 더 선명하다. S클래스는 살짝 미끄러지는 듯한 메르세데스 특유의 발진감이 스몄다. 서두에 말했던 ‘어른들’은 S클래스의 주행감을 더 좋아할 듯하다.
숏 보디형이라도 에어 댐퍼는 기본. 참고로 매직 보디 컨트롤은 S560 중에서도 후륜구동형에만 들어간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서민들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사실 에어 댐퍼도 너무 좋은 승차감을 자랑하니까. 게다가 메르세데스-벤츠의 에어 서스펜션 주무르는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 않은가. 실제로도 S350d의 승차감과 고속안정성은 양산차 스펙트럼을 훌쩍 웃돈다. 다만 뒷자리 승차감은 롱보디형에 비해 확실히 툴툴거린다. 하체 세팅 때문이라기보다는 휠베이스 차이에 따른 결과인 듯. 운전할 때는 숏 보디의 기민한 운동성에 마음이 끌리지만 뒤에 사람을 태우기에는 역시 롱 보디가 나아 보인다.
2018년 1월 출고한 시승차의 가격은 약 9,600만 원. 신차가는 1억4,600만원이었다. 즉 잔존가치는 약 65%라는 계산이 나온다. 대형차치고는 생각보다 감가가 적었다. 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모델이기에 어쩔 수 없다. 이마저도 없어서 못 판다고, 들어오는 대로 나간다고 한다.
수요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회전이 잘 되는 중고차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완전한 풀체인지 모델의 출시가 다가왔지만 매력은 여전하다. 국산 대형차에는 V6 디젤 엔진도 없고 에어 서스펜션도 없기 때문에 결국 남는 건 독일 라이벌 뿐. 그런데 어른들께 ‘차는 벤스’라고 배우지 않았는가. 결국 우리의 선택은 S클래스로 귀결될 것이다.
취재 협조 : 정성모터스, 070-8840-4032, https://bit.ly/36s56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