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8 차돌박이
▶세금 2천억원 들인 러시아 대통령 리무진 [아우러스]
▶방탄은 기본에 잠수함 기능까지..'푸틴의 움직이는 성'
▶'노망'으로 끝나게 생긴 차덕후 푸틴의 '로망'
▶영상으로 보시면 더 쏙쏙 들어오는 푸틴 리무진의 처참한 근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날뛰고 있습니다. 망연자실하게 미친 듯 올라가는 주유기 요금표시기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이 모든 일의 원흉으로 지목할 만한 인물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더욱 괘씸한 점은 이렇게 수많은 내연기관 오너드라이버들 가슴과 통장잔고를 갈갈이 찢어내도 있는 푸틴 역시, '차덕후'로 유명한 인물이라는 점이죠. KGB 스파이로 근무하던 중 소련이 붕괴하자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차로 불법 택시영업(순우리말 : 콜뛰기)을 하며 왕년에 핸들 밥을 먹어본 양반일 뿐더러, 각종 자동차를 비롯해 콤바인과 F-1레이싱카까지 '바퀴' 달린 탈것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몰아보기로도 유명하죠.
'차덕후' 푸틴은 자신의 차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2012년 러시아 대통령 3선에 성공하 푸틴은 취임과 동시에 세금 2천억원을 투입해 '러시아 리무진' 개발을 명령했습니다. 러시아 중앙 엔진 과학 연구소(NAMI)에 자금지원과 함께 포르쉐를 사업 파트너로 붙여줬죠. 그리고 마침내 6년 뒤. 푸틴의 4번째 대통령 당선 연설 현장에 '푸틴에 의한, 푸틴을 위한, 푸틴의 자동차'가 등장합니다. 나랏돈 2천억원을 들인 러시아 대통령 리무진 [아우러스] 였습니다.
▶ '잠수함 기능'까지 갖춘 푸틴의 움직이는 성...[아우러스] 리무진
푸틴의 취임식 당시 공개된 아우러스는 내외신의 큰 집중을 끌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받은 점은 가공할 '크기' 였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의전용 차량으로 쓰였던 미국 GM사의 '비스트'의 전장은 5.5m 수준입니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의전차량으로 널리 사랑받는 벤츠 풀만가드의 크기는 6.5m정도죠.
하지만 아우러스는 과거 구소련 국가들의 크고 아름다운 전시행정 스케일을 연상하게 하는 7m의 전장을 자랑했죠. 육중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속도도 상당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의전 차량 '비스트'가 최고 시속이 96km 수준인데 비해, 아우러스의 민수형 버전은 페라리와 러시아중앙엔진과학연구소가 합작으로 만든 8기통 하이브리드 엔진으로 최고시속 210km에 달하는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의 차' 답게 철저한 방탄성능도 돋보였습니다. 영국 '더 선'의 보도에 의하면 푸틴의 리무진은 로켓포 공격이나 지뢰 방호력을 갖춘 건 물론, 차량이 완전 밀폐되어 물에 빠져도 탑승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잠수 기능' 또한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멍이 나도 오랫동안 주행할 수 있는 특수 타이어와 6cm에 달하는 강화유리, 화생방 상황에 대비한 '공기 압축 시스템'과 야간 투시경 적외선 시스템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푸틴의 생존을 위한 기술이 투입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러시아 대통령의 차'를 만들기 위해 최소 2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2000억 원은 민간 기업의 '신차 개발' 예산으로는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닙니다. 쌍용 체어맨의 개발비가 무려 4500억 원에 달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벤츠 풀만가드 등의 '대체제'를 훨씬 저렴한 금액에 구할 수 있었는데도 푸틴은 국가예산을 투입해 '메이드 인 러시아 리무진' 개발에 집착했다는 겁니다. 어째서였을까요?
▶ 푸틴이 '러시아 리무진'에 집착한 이유?
사실 러시아의 국가 지도자들, 정확히 말하자면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지도자들은 '러시아 리무진'을 공식 의전차량으로 사용해왔습니다. 그 시작은 누구나 알고 있는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었습니다. 스탈린의 이름을 따와서 지은 소련의 자동차회사 zis(Zavod imeni Stalina)에서 만든 zis-101리무진을 시작으로, 고르바초프에 이르기까지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소련의 지도자들은 '메이드 인 러시아' 리무진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건 '자동차 생산국'의 지도자라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캐딜락이나, 일본 총리와 천왕의 도요타 센추리, 우리나라 대통령의 제네시스까지 모름지기 '자동차 생산국'의 최고 지도자라면 '국산 자동차'를 의전용 차량으로 사용하는게 흔한 현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러시아산 리무진은 소련 해체 이후로 그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소련을 해체시킨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은 과거 냉전시대 소련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일환으로 50년 넘는 전통의 '러시아 리무진'을 벤츠로 바꿔버렸습니다. 그 이후 러시아 경제가 모라토리움(지불유예선언)을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외국 자본의 도움이 간절해진 러시아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과거 '냉전 시대의 갈등'을 떠올리게 하는 '소련 리무진'을 더더욱 기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푸틴이 3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며 사실상 '독재자'로서의 기반을 닦아나가면서 봉인된 '러시아 리무진'의 명맥도 부활했습니다.
푸틴은 3선 취임과 동시에 '러시아 리무진 부활'을 천명하며 대규모의 국가예산을 투입했습니다. 과거 소련 시대의 패권을 상징하는 '러시아 리무진' 부활 계획과 함께 러시아의 대외정책 역시 강경일변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등 국제사회에 물리적 개입을 주저하지 않으며 러시아는 패권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갔죠.
이 모든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실제로 푸틴의 리무진을 디자인한 아우러스의 수석 디자이너는, 아우러스의 디자인 모티브가 과거 스탈린이 사용했던 ZIS-110 리무진이라고 밝혔습니다. 참고로 이 차량은 스탈린이 '공산주의 동맹국'의 수장이었던 마오쩌둥과 김일성에게 선물해줬던 차량이기도 했죠. 즉 푸틴은 과거 소련이 세계2강으로 군림하던 시절의 '스탈린 자동차'를 부활시킨 셈입니다.
실제로 스탈린 치하의 소련 못지않게 최근 러시아의 행보는 확장지향적이고 공격적이죠.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에 대해 푸틴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푸틴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 러시아 자동차의 영광을 위하여! 푸틴의 원대했던 꿈, 하지만....
한편 푸틴의 '러시아 리무진' 제작 계획은 단순히 '소련의 상징'을 부활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도 갖고 있었습니다. 사실 러시아는 아주 오래 전부터 '라다 쥐굴리'나 '라다 니바' 같은 차량을 만들어 수출해 온 '자동차 수출국'입니다. 하지만 러시아 자동차들의 이미지는 점점 참담해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험준한 환경에서도 시동성능을 보장하는 나름 내구성 좋은 차로 평가받으며 호평 속에 수출된 적도 있었지만, 편의사양을 등한시하고 성능개선에 소홀했던 나머지 '그냥 시동만 잘 걸리는 구닥다리 차'로 놀림받는 차로 전락해버린 게 러시아 자동차 산업계의 참담한 현실이었습니다.
이미지가 무너지고 수출량이 무너지고 러시아 자동차 산업이 황폐화되는 현실 속에, 푸틴의 '러시아 리무진 개발' 프로젝트는 사실 '리무진 한 대'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일종의 '플래그십 자동차'를 만들어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한편, 푸틴의 리무진 '아우러스'를 브랜드로 세단, 리무진, suv, 미니밴 등 다양한 차급으로 차량을 만들어 러시아의 '플래그십 자동차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계획이었죠. 궁극적으로는 연간 1만대 씩 차량을 생산해 생산량의 7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하며 '구닥다리 차' 취급받는 기존의 러시아 차량으로서는 넘볼수 없는 시장이었던 럭셔리 자동차 시장을 개척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 차덕후 푸틴의 '로망'...결국 '노망'으로 끝나나?
백보 양보해 국가 차원에서 럭셔리 차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좋았습니다, 의도는.
문제는 이 '러시아 리무진 프로젝트'의 입안자이자 실행자였던 푸틴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는 것이죠. 푸틴이 야심차게 만든 '아우러스' 브랜드는 럭셔리 카 시장에 걸맞는 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하는 '명품' 제품군입니다. 문제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그 '자칭 명품' 브랜드의 창업주가 국제적인 전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전쟁 범죄자'로 취급받는 사람이 런칭한 명품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을까요? 그 제품을 사용하는 순간 본인의 도덕성과 수준을 의심받으며 사용자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좀먹는 '자칭 명품'을 말입니다. 극소수 '러시아 애국자 갑부'들의 헌신적인 나라사랑(혹은 홍차 시식 면제)에 기인해 내수 판매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애당초 이 '러시아 럭셔리 카'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생산량 70% 이상 해외 수출'이 쉽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만에 하나 러시아의 우방국에서 '아우러스' 구매를 희망한다고 한들, 이제는 생산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아우러스는 러시아 솔러(soller)와 미국 포드(ford)의 합작 공장에서 생산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포드는 러시아 시장 철수를 선언했기 때문이죠. 이제는 판매는 커녕, 생산조차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푸틴의 움직이는 성' 아우르스. 푸틴이 나랏돈을 2천억 넘게 퍼부어 6년이란 시간을 투자해 만든 '럭셔리 러시아 자동차'의 꿈은 푸틴 스스로의 폭주로 몰락을 앞두고 있습니다. 과연 '차덕후' 푸틴은 아우러스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