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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빼앗겼다. 날카로운 눈매와 섹시한 자태에 자꾸만 눈이 간다. 관심은 이내 감동으로 번졌다. 지축을 뒤흔드는 V8 엔진의 사운드, 폭력적인 가속력, 칼로 베는 듯한 주행성까지 모든 게 경이롭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시승기의 주인공은 마세라티의 SUV, 르반떼 GTS다.

출시하고도 5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유려한 보디 라인은 곳곳에 날카로움이 서려 있다. 눈매와 디테일은 스포티함과 고급스러움이 어우러져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 가운데 자리잡은 ‘트라이던트’ 엠블럼은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21인치 헬리오스 매트(Helios Matt) 휠과 붉게 칠한 브레이크 캘리퍼는 이 녀석의 퍼포먼스를 암시하는 듯하다. 눈길 닿는 곳 하나하나가 매혹적이다.

인테리어는 이탈리아 특유의 장인 정신을 담았다. 북유럽산 황소만을 고집한 ‘피에노 피오레(Pieno Fiore)’ 가죽 시트, 알칸타라로 감싼 블랙 헤드라이너, 알루미늄과 카본을 듬뿍 바른 센터페시아까지. 최상급 소재들을 엄선해 실내를 호화롭게 장식했다. 물론 구석구석 오래돼 보이는 포인트도 있다. 그러나 막상 운전석에 오르고 나면 고급감에 묻혀 티가 잘 안 난다. 분명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르반떼 GTS의 하이라이트는 심장이다. 주인공은 V8 3.8L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 제원 상 최고출력은 550마력, 최대토크는 74.7kgf·m에 달한다. L당 145마력을 내는 괴물이 보닛 아래 자리잡았다. 여기에 ZF社가 공급하는 8단 자동변속기와 Q4 사륜구동 시스템이 호흡을 맞췄다.

그 결과는 경이롭다. 르반떼 GTS는 4.2초만에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한다. 최고속도는 292km/h에서 제한. 이게 정녕 SUV의 스펙이 맞는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참고로 초창기 르반떼는 V6 가솔린과 디젤 2종만 출시됐다. 이들도 우수한 동력 성능을 자랑하지만 GTS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진짜는 GTS부터다.

본격적으로 달릴 차례. 시동 버튼을 지긋이 누르자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엔진이 깨어난다. 배기 플랩을 여는 버튼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저 ‘노말’ 모드로 시동을 걸었을 뿐인데도 강렬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흘겨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 왠지 첫인상이 사납다.

우려와는 달리 주행감은 꽤 부드럽다. 에어스프링으로 버무린 하체는 편안한 승차감을 선사하고 엔진은 ‘550마력’이라는 타이틀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선형적인 가속감을 선사한다. 거칠게만 느껴졌던 배기 사운드는 은은하게 귀를 울린다. 향긋한 가죽 냄새는 코 끝을 자극하고 파노라마 선루프 사이로 비치는 바깥 풍경은 마음을 포근하게 만든다. “알고 보면 착한 놈이야”라며 드라이버를 어르고 달래는 듯한 느낌이다.

르반떼 GTS의 본성이 드러나는 시점은 엔진 회전 3,700rpm 즈음. 이때부터는 성격이 조금씩 살아난다. 가속 페달은 한껏 예민하게 굴기 시작하고 변속기는 변속 시점을 늦추며 달리기를 재촉한다. 엔진과 배기 시스템은 앙칼진 소리를 쏟아낸다. 귀곡성 같은 소리가 인적 드문 산길을 가득 채운다.

‘스포츠’ 버튼에 손을 갖다 대자 차체를 더욱 낮게 웅크린다. 비로소 진짜 모습을 내비치는 것. 이때부터는 차체의 기울어짐을 극도로 억제하며 굽잇길을 주파한다. 아울러 Q4 사륜구동 시스템은 빠르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구동배분을 이어 나가며 피렐리社의 P-ZERO 타이어는 노면을 딱 붙들고 놓치지 않는다. ‘SUV가 이 길을 어떻게 이렇게 달리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와인딩 로드에서의 운동성이 수준급이다.

특히 엔진과 변속기의 궁합이 인상적이다. 두 개의 과급기로 조율한 V8 3.8L 가솔린 엔진은 무더위 속에서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터보 래그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변속기는 마치 드라이버의 머릿속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영민하게 단수를 오르내린다. 제동할 때에는 다운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이어나가며 재가속에 대비한다. 정말이지 껍데기만 SUV일뿐 달리는 건 스포츠카 못지 않다.

미친 듯이 달리다가도 ‘노말’ 모드로 돌아오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단번에 바뀐다. 단단하게 조였던 하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을 풀며 엔진을 비롯한 파워트레인은 얌전하게 군다. 르반떼 GTS는 드라이브 모드 간 주행성의 변화가 극적이다. 럭셔리 SUV와 스포츠카가 한데 어우러진 듯한 기분이다.

고백건대 필자는 르반떼의 탄생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마세라티가 SUV를 만든다···’. 고집 센 이탈리아 놈들이 SUV를 내놓는다는 건 마치 “돈이 필요해”라는 이야기처럼 들렸었다. 고성능 버전인 르반떼 GTS, 심지어 르반떼 트로페오가 등장했을 때에도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다. 필자의 편견과 아집이 낳은 오류다. SUV의 탈을 썼을지언정 DNA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르반떼 GTS는 마세라티의 헤리티지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명차(名車)’다.

이정현 기자

urugonza@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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