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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습니다. 여기서는 마음보다는 머리로 디펜더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개봉일이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그전에 시승기를 전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승차는 산토리니 블랙 컬러의 올 뉴 디펜더 90 250 SE입니다. 레인지 로버나 디스커버리와 달리 정통 오프로더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90과 110은 동일하지만 110은 SUV에 더 가깝죠. 90은 오프로드에 더욱 특화된 모델이고요. 보다 더 짧은 휠베이스 덕분에 접근각(31.5도)과 이탈각(35.5)도 달라집니다. 숏 보디의 형태와 함께 이런 차이점 때문인지 저에게는 90이 오리지널 디펜더의 헤리티지를 더욱 잘 이어가는 모델로 다가왔습니다.

Exterior

1세대에 비해 조금 동그랗게 바뀌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수직적인 형태에 면을 크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헤리티지를 이어가는 듯합니다. 넓은 면적에 선을 남발하지 않아 전반적으로 단순하게 느껴지는 점도 비슷하게 느껴지고요. 화려한 기교가 없어 최근 나오는 자동차들과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면을 크게 사용하기에 전체적으로 끊김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지만, 세부적인 요소들은 자신만의 영역을 지킬뿐 다른 곳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단순하면서 간결한 디자인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죠.

전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헤드램프입니다. 완전한 동그라미 형태는 아니지만 원형 헤드 램프가 있고 옆에는 사각형 형태의 램프가 두 개가 더 있습니다. 분명 차이는 있지만 원형과 동일한 형태와 개수입니다. 헤드램프의 영역을 사각형으로 한정한 것도 유사하죠. SE에는 S와 다르게 매트릭스 LED 헤드램프와 시그니처 DRL이 들어가요. 전방 안개등도 추가되고요. 헤드램프 말고도 1세대와 2세대 모두 가로 뻗은 선이 강조된 그릴도 앞으로 조금 돌출되어 있고, 보닛 가운데 부분도 위로 솟아 있습니다.

옆에서 보면 휠 하우스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옆으로 튀어나와 있죠? 랜드로버는 전면에서 측면으로 이어지는 면을 숄더라고 지칭하는데, 이 공간도 강조되어 있습니다. 가로로 쭉 뻗은 직선을 통해서 말이죠. 측면에는 공기 흡입구가 있는데 이 차가 도강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 높이에 맞춰 디펜더 90은 최대 850mm까지 도강이 가능합니다. 루프 라인 또한 마찬가지고 이른바 알파인 라이트라고 불리는 창문도 그대로입니다.

측면에서 후면으로 날카롭게 넘어가는 것도 똑같습니다. 마치 칼로 자른 듯 정확하게 옆면과 뒷면을 구분 짓죠. 그렇게 뒤로 넘어가면 오른쪽으로 열리는 테일게이트도 변함없습니다. 사이드 오픈 테일게이트에는 스페어타이어가 붙어 있습니다.

Interior

110보다 길어진 도어를 열면 펼쳐지는 실내 또한 평범하지 않습니다. 노출 구조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도어에는 볼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노출은 대시보드에서도 이어집니다. 마그네슘 합금 크로스가 빔 구조라고 하는데, 차체 구조물을 가리지 않고 노출하면서 하나의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거죠. 디펜더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면서 독특한 디자인을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기어 노브의 위치도 색다릅니다. 센터페시아 쪽으로 바짝 올라와 있습니다. 조작의 불편함보다는 운전석에 앉았을 때 기어 노브 쪽에 가까이 위치한 몇몇 버튼에 대한 시야를 방해하긴 합니다. 큰 불편함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비상등 버튼이 너무 멀리 있어서 손이 잘 닿지 않는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5 시트가 기본이고, 앞 좌석에 보조 시트가 추가되는 6 시트는 114만 원의 추가 비용을 더 내야 합니다. 센터 콘솔 암레스트가 있는 5 시트가 더 좋은 선택 같아요. 콘솔 안에 냉장 기능도 있어서 마실 거 넣어 놓기 좋거든요.

1열 시트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2열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스티어링 휠과 대시보드 쪽으로 시트를 이동할 때는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시트가 원하는 위치에 멈출 때까지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합니다. 시트를 옮기고 나면 접어야 하는데 수동이에요. 전고가 높다 보니 올라가서 뒤로 이동하기가 수월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힘겹게 2열로 들어서면 공간은 넓습니다. 시트 아래 자리 잡은 여러 장치 때문인지 후석의 시트 포지션은 높아요. 그래도 헤드룸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성 평균 신장보다 조금 더 큰 저에게는 말이죠. 파노라믹 선루프도 있지만 루프 측면에서 들어오는 햇빛까지 즐길 수 있는 알파인 라이트가 마음에 듭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2열 시트는 등받이 각도 조절이 안됩니다.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앉아 있기 힘들 정도의 각도는 아닙니다. 후석 온도 조절도 불가능한데 옵션을 추가하면 3존 실내 온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Performance

새로운 인제니움 직렬 6기통 3.0L 디젤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 출력 249마력, 최대 토크 58.1kg.m의 성능을 발휘합니다.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0-100km/h 가속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8초입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88km로 제한되고요. 빠른 가속력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보어와 스트로크는 83.0 x 92.3으로 롱 스트로크 특성이 나타납니다. 낮은 엔진 회전수에도 비교적 큰 토크를 만들어내죠. 실제로 최대 토크가 발휘되는 시점은 1,250rpm~2,500rpm입니다. 낮은 회전 영역부터 힘이 발휘되어 두터운 토크를 보여줍니다. 오프로더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겠죠. 변속기와의 조합도 좋아 오른발에 힘을 주면 부드럽게 나아가는데, 마치 가벼운 차를 탄 것처럼 2톤이 넘는 무게를 잊게 됩니다.

조금 더 덧붙이면 피스톤 움직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최소화하고 정밀 연료 분사 시스템과 같은 고도화된 기술을 더해 출력과 효율성을 높인 새로운 엔진과 함께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적용되었습니다. 시속 17km 아래로 떨어지면 엔진 구동을 멈추고 회생 제동을 통해 배터리를 충전합니다. 보조 동력으로 활용되는 만큼 효율성, 초기 발진감, 가속 성능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태죠.

낮은 회전 영역부터 큰 힘이 나오니 일상적인 주행에서 만족감은 큽니다. 답답함이 없어서요. 엔진 소리도 잘 억제된 편이라 실내는 조용합니다. 하지만 속도를 내고 달리다 보면 차의 형태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태생적인 한계로 바람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전고도 높고 앞 유리도 꽤 서 있는 편이니까요.

승차감은 좋습니다. 타이어는 굿이어의 랭글러로 오프로드에 초점이 더 맞춰진 타이어지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하체는 단단하기 보다 부드러운 편입니다. 에어 서스펜션이 빠졌지만 충격 흡수도 최소화하면서 만족스러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랜드로버는 디펜더에 적용된 최신의 모노코크 구조의 D7x 아키텍처를 뛰어난 강성과 견인 능력으로 포장하지만,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도 우수해 거친 노면에서도 꽤 세련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승차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죠.

고속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무게 중심이 높아 빠른 속도로 코너를 진입하면 좌우로 움직임이 심해지면서 불안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온로드에서 탁월한 운동 성능을 보여주는 모델이 아니니 이해할 만합니다.

Infotainment

마무리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언급하려고 합니다. 바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피비 프로입니다. 유럽에서 비영리 단체로부터 뛰어난 커넥티드 기술을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피비 프로의 우수함은 인터페이스와 내비게이션입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연상되는 인터페이스는 다루기 쉽습니다. 그리고 반응이 빠른데요 퀄컴의 최첨단 스냅드래곤 820Am 칩이 탑재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피비 프로는 LG 전자와 공동으로 개발한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LG 스마트폰에 선입견이 있더라도 피비 프로는 마음에 드실 것 같아요.

LTE 모뎀이 포함된 최신 내장형 듀얼 eSIM이 들어가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서 음악을 스트리밍하는 와중에도 무선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T맵 내비게이션도 기본 적용되어 있으니까요. 순정 내비게이션이라 클러스터 연동도 가능합니다.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 기능이나, 앞 유리에도 적용된 열선, 트렁크에 있는 220V 전원 소켓, 카펫을 걷어내면 드러나는 플라스틱 바닥 등등 얘기하고 싶은 것은 더 많지만 사심 가득했던 리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 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할게요. 불멸의 럭셔리를 두고 조승연 작가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적 유연성과 공간적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특정 지역을 벗어나더라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미겠죠?

저는 이 두가지가 단순히 럭셔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단순히 기능만 좋다고 사람들이 구매하지 않죠. 기능도 기능이지만 일단 예뻐야 하고 특별해야 하지요. 여기서 특별함은 다른 브랜드와 확실하게 구분짓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여러가지 매력이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매력은 타성에 젖지 않고 유행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이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이 지점이 시공간적 여유랑 맞닿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디펜더가 그렇습니다.

사진 / Art Director Q, Yves Saint Naurent

이순민

royalblue@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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