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4 유현태
BMW의 320i M SPORT PACKAGE LCI를 장기간 시승했다.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 컴팩트 세단의 정석으로 통용되는'3시리즈'다. 대개 '프리미엄' 승용차라 한다면 화려한 디자인과 사치스러운 소재로 무장한 인테리어가 떠오를 것이다. 또 안락한 공간감이나 편안한 승차감이 주요 가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프리미엄 컴팩트'라는 표현에 있어서는 '소형'이라는 단어에 조금 더 비중이 실려 있다. 작은 차체와 제한된 원가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3시리즈가 '프리미엄 컴팩트 세단'의 본보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본기'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잘 달리고 멈추는 것은 기본, 운전자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있는 수준 높은 섀시를 갖추어야 한다. 강도 높은 소재와 마감, 정교한 가공을 통해 생산된 복잡한 구조물이 합쳐져 끝내 안정된 세팅이 가능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높은 명성을 쌓아 올린 3시리즈의 입지는 훌륭히 평가받을 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입증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통상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원가절감 대상이 되기 십상이지만, BMW는 그 성능에 쉽사리 타협하지 않았다.
사실 '컴팩트'라고만 부르기에는 3시리즈의 크기가 많이 커졌다. 출시 초기에는 아예 2도어 모델이었고, C세그먼트에 속해있었다. 이후 기술 발전과 수요 증대를 위해 세대 변경을 거듭하며 차체를 키운다. 이는 모든 프리미엄 컴팩트 세단의 공통된 흐름이다. 아무래도 '세단'이라면 2열 거주성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고, 하물며 딱딱하다고만 알려져 있던 섀시 세팅도 대중성을 위해 완화된다. 그 대신 BMW는 'M 스포츠 패키지'라는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대중성을 입은 후륜구동 컴팩트 세단에서, 3시리즈 고유의 감성을 누려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번 시승 차량 320i 역시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되어 공격적인 프런트 마스크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상단으로 꺾인 어댑티브 LED 램프를 지니게 되었고, 그 디자인은 굵직한 카리스마를 나타낸다. M 스포츠 패키지의 키드니 그릴은 테두리 몰딩까지 검은색으로 마감되어 스포티함이 강조된다. 또 넓은 면적의 에어 인테이크와 에어 커튼으로 꾸며진 범퍼는 누가 보아도 '달리기'를 위한 자동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물로 볼 때 3시리즈의 노즈는 생각보다 더욱 낮게 뻗어있다. 날렵한 스탠스가 직시적으로 느껴진다.
후륜구동 특유의 비율이 잘 나타나고 있는 측면 디자인이다. 길게 뻗어있는 보닛과 짧은 트렁크 데크, 하지만 분명하게 구분된 실루엣이 '롱 노즈 숏 데크' 라는 역동적인 비율의 정석이다. 벨트라인이 약간 사선으로 뻗어있어 날렵함이 가미된다. 그리고 C필러 끝 역슬렌트 형상은 '호프 마이스터 킥'이라는 BMW 디자인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전면 범퍼와 함께 하단부 스커트가 두껍고 공격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휠 하우스에 꽉 들어찬 18인치 더블 스포크 휠은 탄탄해 보이는 자세를 만들어주고, 스포크 틈으로 비치는 M 스포츠 브레이크가 매력이다.
후면 디자인이다. 뒤로 갈수록 상승하는 캐릭터 라인으로 인해, 트렁크 리드가 생각보다 높게 자리 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솟아오르는 형태의 디퓨저 덕분에 전체적인 실루엣이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실루엣 중심에 날카롭게 자리 잡은 테일램프는 그 디자인부터 그래픽까지 카리스마가 넘친다. 실제로 보면 입체감이 꽤나 큰 형태였다. 두꺼운 가니시와 디퓨저로 치장한 M 스포츠 패키지의 범퍼, 그 아래로 자리잡은 대구경 듀얼 머플러 팁이 재미있는 디자인 요소가 된다. 이번 3시리즈 LCI의 외관 디자인은 그런 차별점으로 인해 MSP 선택이 필수적이다.
간결함이 돋보이는 인테리어다. 원래도 간결한 BMW의 실내였지만, 14.9인치 크기의 센터 스크린과 디지털 클러스터를 통합하면서 더욱 깔끔해졌다. 센터페시아의 공조 장치까지 디스플레이에 통합되며, 에어벤트 디자인도 한결 다듬어진다. 변속기는 토글 레버 타입이다. 대시보드와 센터콘솔을 마감하는 알루미늄 소재와 가죽 마감이 '프리미엄'다운 면모를 보인다. 특히 야간에는 인테리어 트림 사이로 비치는 앰비언트 라이팅이나, 센터콘솔의 은은한 무드등 색감이 고급스러움을 자극한다. MSP는 하만 카돈 서라운드 스피커까지 빠지지 않았다.
M 스포츠 스티어링 휠의 중요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3스포크 타입, 역시 알루미늄 색감으로 장식한 스포크 디자인이 세련미를 자극한다. 스포크 아래에 부착된 'M'배지가 주는 시각적인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 요즘 세단치고 상당히 두꺼운 그립과 홈이 파여있는 만족스러운 파지감, 차가운 감촉의 패들 시프트가 흥미를 자극한다. 3시리즈는 일반적인 준중형 세단보다도 시트 포지션이 낮게 깔려있다. 시트의 지지력이나 질감도 고급스럽고, 전동 메모리와 열선 기능을 지원한다. 약간 시야를 올리면 보이는 헤드 라이너 마감도 만족감을 더한다.
차체 크기를 생각한다면 뒷좌석 공간 자체가 넓게 느껴지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3시리즈는 '후륜구동' 컴팩트 세단이다. 뒷바퀴를 굴리는 중형 차량치고 3시리즈처럼 2열이 편한 차가 없다고 알려진다. 특유의 윈도우 라인으로 꾸며낸 넓은 개방감의 창문, 발 공간의 여유를 마련한 레그룸이 특징이었다. 절묘한 시트 백 각도도 편안함을 더하며 독립 공조 기능까지 지원한다. 만약 이러한 공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대안은 국산 차나 SUV밖에 없을 것이다. 평탄하게 마감되어 있는 전동 트렁크 공간, 매트 아래 잔여 공간은 없다.
다시 한번 3시리즈 특유의 낮게 깔린 시트 포지션을 느껴본다. 토글 레버 타입 변속기가 이따금 조작감이 재미있지는 않더라도, 시동 버튼을 누르고 변속하는 그 감각이 가장 편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3시리즈 320I에는 2.0L급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에 싱글 터보가 배치된다. 184마력의 최고출력과 30.6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변속기는 역시 ZF의 8단 토크컨버터가 채택되었으며, 뒷바퀴를 굴린다. 공차중량은 1635kg, 제로백 7.4초, 공인 연비는 11.2Km/l다. 후륜구동 대비 적정한 공차 중량과 넉넉한 토크를 지니고 있다.
시승 차량은 MSP를 추가하면서 섀시가 M 스포츠 서스펜션으로 세팅되어 있다. 요즘 차량치고 승차감이 굉장히 하드한 편 이다. 누구든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묵직한 하체에서 전해지는 승차감이 역시 '3시리즈' 다운 느낌을 받게 된다. 실제 3시리즈 기본 사양은 승차감이 부드럽다. 시승 차량의 셋업이 과거처럼 '딱딱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요즘' 차량치고 정말 무겁게 조율된 수준이다. 뒷바퀴를 굴리는 구동방식과 5:5의 이상적인 무게비, 정교한 서스펜션 지오메트리를 통해 다이내믹한 주행감을 제공한다.
주행 모드가 컴포트, 에코, 스포츠로 구분된다. 실제로는 에코와 스포츠 모드로만 주행을 하게 된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무게감 있는 스티어링 휠과 은은하게 유입되는 부밍 사운드, 토크감을 더하는 변속기의 움직임이 직관적인 차이를 남긴다. 발진감은 선형적이고 굉장히 경쾌하다. D세그먼트 세단 특유의 치고 나가는 느낌이 정말 즐겁다. 그런 가속감과 대비되는 묵직한 서스펜션 감각이 안정성을 돋보이게 만든다. 코너링, 특히 급격한 코너에 갈수록 타이트한 조향 감각이 느껴지며, 기민하게 움직이는 후륜 측 링크가 차체를 안정적으로 지지해 준다.
그렇듯 급격한 코너나 회피 기동에 있어 롤을 안정적으로 억제해 주는 움직임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중의 움직임에 따라 차체가 흔들린다기보다도 밀리는 느낌, 그 밀리는 느낌을 하체가 안정적으로 받아낸다. 2.0L 엔진의 파워만으로도 출력은 충분하지만, 하체는 그 이상의 파워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때문에 주행에 있어 더욱 뚜렷한 자신감을 지니게 된다는 점, 3시리즈의 뛰어난 밸런스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트 포지션의 각도나 M스포츠 스티어링 휠의 끈끈한 그립 등 차량에 앉아있는 동안은 온전히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기도 하다.
이따금 컴포트한 운전을 필요로 한다면 '에코'모드로 전환을 한다. 그 엑셀 반응이 확실히 둔화되지만, 기본 출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주행에 대한 불편함은 없다. 엔진의 진동이나 소음이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굉장히 부드러운 회전 질감을 느껴볼 수 있고, RPM을 불규칙적으로 높여보아도 소음은 확실하게 억제되어 있다. 변속기의 반응성도 이상적인 감각이다. 댐핑력은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고속 안정성은 여전하다. 고속에서도 잘 억제되어 있는 풍절음이나 노면 소음은 프리미엄 세단 다운 감각이다.
레벨 2.5수준, ADAS 장비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그립감지식 스티어링 휠로, 정체 구간에서 활용한다면 편리한 운전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점은 항속 주행 시 확인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연비였다. 장거리 운행 시 대략 17km/l 수준의 연비가 기록된다. 후륜구동 세단치고 정말 월등한 효율성이다. ZF의 8단 자동변속기는 모든 부분에서 능통하게 반응하는 셈이다. 누군가에겐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승차감만 제외한다면, 프리미엄 세단의 진가가 느껴진다. 반면 베이스 모델은 장거리 운행에도 불편하지 않은 승차감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3시리즈는 스포티 세단의 진가를 경험하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요즘에는 흔치 않은 단단한 셋업이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후륜구동 '컴팩트' 세단의 정석이자,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당사의 핵심 가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차량이다. 엔트리 트림인 만큼 출력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여유 넘치는 출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별한 부담이 없는 감각 덕분에 더욱 주행에 대한 즐거움을 누려볼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가장 완성도가 높아진 디자인까지도 3시리즈의 매력은 질리지 않는다.
BMW 320I M스포츠 패키지를 장기간 시승했다. 3시리즈의 정통성에 따르자면 M스포츠 패키지의 선택은 필수인 것 같다. 보다 상징적인 디자인과 단단한 승차감을 느껴볼 수 있었다. 특유의 매끄러운 코너링 감각은 왜 많은 사람들이 BMW라는 브랜드에 매료되는지 직시적으로 깨닫게 된다. 품질 상향 평준화의 시대에서, 특정 차종이 시장을 리드한다는 느낌은 더 이상 받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3시리즈는 그 혁신성 보다도 정통성에 더 큰 가치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컴팩트 세단 시장에서 3시리즈의 브랜드 밸류가 더욱 돋보이는 것 같다.
글/사진: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