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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아 EV3의 E-GMP 섀시 구조 논란으로 인해 '플랫폼'의 정의가 시사점으로 떠오른 바 있다. EV3의 섀시는 니로 EV와 유사했던 형식, 다시 말해 내연기관 자동차의 계량형 뼈대를 사용한다. Platform, 그 어원에 기인하자면 형식적인 '틀'을 의미할 것이다. 보통은 '프레임'과 유사한 의미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나, 최근 생산되는 대부분의 차량들은 차체와 뼈대가 통합된 모노코크 타입으로 알려져 있다. 기아의 입장 표명에 따르면 'E-GMP'라는 표현 자체를 차세대 전기차의 기술력, 내지는 자격을 의미하는 브랜드라고 받아들여야 했다.

사실 플랫폼 공용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원가 절감'이다. 소재나 형상 측면의 원가 절감 효과도 물론 고려되겠지만, 정확히는 연구 개발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반대로 정해진 원가 내에서 최적의 플랫폼을 구현한다면, 같은 구성요소를 채택하는 모든 제품의 품질이 상향되는 셈이다. 그런 개념을 선도적으로 실현한 기업이 폭스바겐 그룹이었다. 중형 세단부터 대형 SUV에 걸쳐, 동일한 플랫폼을 채택한 바 있다. 그에는 BIW의 주요 구성요소인 필러 보강부나 서브 프레임, 스트럿 마운트 등, 그리고 서스펜션 지오메트리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브랜드마다 공용 '플랫폼'을 엔트리 라인업의 세일즈 포인트로 소구하기도 한다. 검증된 상품성을 입증할 것이다. 반면, 플랫폼의 정의에 연연할 필요 없이 상품성만 훌륭하다면 된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다. 이번 글의 주제인 '투아렉'은 섀시 지오메트리와 엔진을 비롯한 플랫폼의 공용화를 제품 경쟁력으로 제시하는 편이다. 세계시장을 대표하는 럭셔리 SUV '벤테이가'나 슈퍼 SUV '우루스'모두 같은 MLB EVO 플랫폼을 공용한 바 있다. 2023년 2분기에는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더 뉴 투아렉'이 공개되었고, 이듬해 8월 한국 시장에 출시된다.

시승 차량은 폭스바겐 투아렉 3.0 TDI Prestige 트림이다. 지난 페이스리프트 이후 하위 트림을 생략한 뒤, 편의 장비를 '프레스티지' 상위 트림으로 통합했다. 남은 선택지는 'R-라인'이 있는데, 편의 장비는 동일하기 때문에 디자인 패키지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투아렉 전기형에 탑재되던 15인치 대화면 스크린, HUD나, 에어 서스펜션, 후륜 조향 등 모든 기능들이 기본,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소프트 도어 클로징과 HD 매트릭스 헤드 램프, 16채널 다인 오디오와 루프 로드 센서 등 옵션들이 더욱 보강되었다.

투아렉 페이스리프트의 첫인상은 더욱 웅장해졌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면적이 넓어졌고, 헤드램프에는 '3eyes'라는 신규 DRL이 채택되었다. DRL과 라디에이터 그릴 바가 하나로 연결되는 디자인은 폭스바겐 특유의 간결함과 정교함이 나타난다. 페이스리프트 이후 '라이트 스트립'이 추가되어 더욱 개성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시승 차량은 R-라인이 아닌 기본 사양이지만, 범퍼 형상이 꽤나 스포티하게 꾸며져 있다. 어퍼 가니시까지 유광 컬러로 마감되었고, 수평 형태의 크롬 라인이 정돈된 이미지를 구현한다.

폭스바겐의 MLB 플랫폼은 4륜 구동을 중점으로 엔진을 차축 앞에 배치하는 독특한 레이아웃을 지닌다. 때문에 동급 SUV에 프런트 오버행이 긴 편, 대신 그만큼 보닛 길이가 웅장해 보인다. 경사각이 낮은 D 필러와 함께 역동적인 윤곽선을 지니게 된다. 넓게 확대되어 있는 측면 창이 전형적인 패밀리 SUV의 분위기를 갖춘다. 크롬 몰딩과 루프랙이 조화롭고, 또 기본 20인치 블랙 휠에도 크롬 색상 포인트가 추가되어 있다. 투아렉은 온전한 아치 형태의 휠 하우스가 개성적이기도 하다. 휠 하우스 부근은 플라스틱 소재로 마감된 모습이다.

뒷모습도 이전 모델에 비해 제법 스포티한 인상으로 변했다. 특히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테일램프 커버가 하나로 통합되었다. 전면 라이트 스트립과 통일감을 갖추는 수평 형태의 LED 그래픽이 추가되었고, 역시 3eyes 패턴이 접목된 모습이다. 그 외 테일게이트나 범퍼는 무난한 형태를 보인다. 트윈 머플러 팁이 채택되었고, 수평형으로 배치된 리플렉터가 더욱 깔끔한 인상을 남긴다. 지금껏 폭스바겐 투아렉은 중후하고 강인한 성격만을 추구해온 반면, 더 뉴 투아렉 페이스리프트는 역동적인 분위기가 더욱 강해져 보인다.

실내 인터페이스는 약 12인치 디지털 콕핏과 15인치 대화면 디스플레이, HUD로 구성된다. MIB3 소프트웨어가 탑재되며, 대부분 물리버튼들이 터치스크린에 통합되지만 그나마 직관적인 UI를 갖춘 편이다. 기어 레버는 플로어 시프트 타입, 볼륨 다이얼과 비상등, 그리고 주행 모드와 차고 조절 레버가 센터 콘솔에 배치되었다. 인테리어 트림을 장식하는 우드 트림과 앰비언트 라이트가 고급스럽고 안락한 분위기를 지향한다. 새롭게 탑재된 덴마크 '다인 오디오'는 최대 730KW 급 출력으로 풍부한 음향 성능을 투아렉의 실내에 구현하여 준다.

뒷좌석 공간이다. 넓은 면적의 파노라마 선루프와 함께, 상당히 개방적인 공간감을 갖췄다. 레그룸은 그 길이보다 전폭이 여유롭게 느껴지며, 센터터널도 높게 솟아있진 않은 편이다. 등받이 각도는 수동 레버로 약간의 조절이 가능하다. 2열에도 2존 독립 공조 시스템이 탑재되며, B필러 벤트도 포함되어 있다. 그 외 시트 암 레스트와 열선, 러기지 스크린이 편의 기능으로 마련된다. 평탄하게 마련된 트렁크 공간 역시, 전폭이 넓은 편이라 골프 백 같은 짐을 적재하기 편해 보였다. 매트 아래에는 스페어타이어와 스피커 장비로 차있다.

폭스바겐 투아렉은 배기량 3.0L급 V형 6기통 디젤 엔진으로만 출시된다. 트윈 터보가 과급을 담당하며, 최고출력 286HP, 최대토크 61.2kg.m 수준의 파워를 갖추었다. 변속기는 8단 토크컨버터가 채택되며, 전자식 사륜구동이 기본이다. 공차중량 2271kg, 공인 연비는 10.8km/l로 인증을 받는다. 출력과 중량, AWD를 고려하면 준수한 효율성이 아닐까 싶다. 디젤엔진이지만 회전 질감이 굉장히 부드럽다. 디젤 엔진 특유의 소음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어도 차음 성능은 훌륭한 편, 특히 불쾌한 진동이 훌륭히 억제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에어 서스펜션으로 조율한 승차감은 기본적으로 부드러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묵직하게 느껴진다. 잔잔한 요철들은 매끄럽게 걸러주고, 크게 전해질 법한 충격도 부드럽게 흡수한다. 그러면서도 차체는 심하게 요동치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승차감을 전달받게 된다. 에어 서스펜션은 컴포트와 노멀, 스포츠까지 세 단계로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그 섀시 강도의 변화가 확실하다. 다만 구동이나 조향 장치는 드라이브 모드를 바꾸어도 체감하기에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특히 스티어링 휠은 기본적으로도 묵직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하체가 확실하게 단단해진다. 컴포트 모드에 비해 노면 피드백을 확실하게 전달해 주고, 급격한 코너나 회피 기동에서는 기존 컴포트 세팅과 확실히 움직임이 억제된다. 디젤 엔진과 변속기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느낌이며, 스포츠 모드에서도 그 예민함이 크게 차이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엑셀을 깊게 밟으면 튀어나가는 강력한 토크감이 투아렉의 재미라 볼 수 있다. 다만 저 RPM 토크가 높은 디젤 엔진 특성상, 패들 시프트를 활용해가며 자극적인 출력을 즐기는 건 어렵다. 별도의 사운드 같은 것도 더해지진 않는다.

그래도 스포츠 모드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민첩한 코너링이다. 올 휠 스티어링 기능으로 타이트한 코너도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다. 고속에서는 회피 기동에 대한 안정성을 높여주기도 하는데, 아무렴 적용 유무의 차이가 정말 큰 옵션이었다. 투아렉은 고속에서도 탁월한 안정성과 정숙성을 보여준다. 특히 묵직한 승차감이 인상적이며, 루프 로드 센서를 통해 충격을 더욱 자연스레 걸러줄 것이다. 기본적인 ADAS 장비는 기본, 차로 유지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함께 켜면 '트래블 어시스트' 기능으로 전환되며 정차 후 재출발까지 주행을 돕는다.

에어 스프링 서스펜션의 부가적인 기능은 차고 조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행모드에 따라 총 4단계의 지상고를 세팅할 수 있으며, 그 높이차가 70mm에 달한다. 함께 주행 모드는 온 로드 5종, 오프로드 2종으로 총 7가지를 지원한다. 투아렉의 AWD 시스템은 7:3에서 2:8까지 구동력을 자유롭게 배분할 수 있고, 험로 주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차고 조절 기능은 고속에서 무게중심을 낮추거나, 좁은 골목에서 차체 하부를 보호하는 목적에도 편리하게 사용된다. 전채적으로 다재다능한 기능을 갖춘 패밀리 SUV였다.

폭스바겐 투아렉 3.0 디젤 프레스티지를 시승했다. 사뭇 스포티한 디자인과 넉넉한 편의 장비로 상품성을 보완한 투아렉이다. 정숙하고 안정적인 승차감은 MLB EVO 플랫폼 차량들의 공통된 특성, 투아렉의 강력한 상품성을 입증한다. 단 접근 가능한 프리미엄을 목표로 하는 패밀리 SUV 지만, 1억 원대에 근접하는 가격은 쉽게 범접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합리적인 SUV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 대목이다. 투아렉의 유일한 단점이 브랜드라고 한다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장비들을 자신 있게 탑재하여 출시가 된 차종도 투아렉밖에 없을 것이다.

글/사진: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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