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2 유현태
미디어에서는 기함을 뜻하는 영단어 'Flagship'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플래그십 모델이라 하면 한 브랜드의 성격과 가치를 극대화한 제품을 일컫는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당연히 대형 세단, 혹은 대형 SUV내지는 고성능 슈퍼카를 지칭할 것이다. 플래그십 모델의 성공이 브랜드의 전체 판매량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특히 프리미엄과 거리를 두는 매스 브랜드에 가까울 수록 고가의 차량들은 개발비 대비 시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브랜딩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고, 폭스바겐, 포드, 토요타, 현대차 등 다수 대중 브랜드들은 대형 세단의 양산을 중단한 바 있다.
플래그십 모델도 기업의 본질로써는 이윤 창출의 수단이다. 단지, 시장 규모 자체가 작다 보니 목표 판매량 미달에 대한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럼에도 다수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소비재의 양산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흔히 기업 이미지 개선과 기술력 개발에 큰 원동력이 되어준다고 한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다. 미디어 점유율과 시장점유율은 독립적이다. 대부분 기업들은 마케팅 수단으로 플래그십을 활용한다. 더구나 부가가치가 높은 브랜드일수록 제품보다는 '브랜드' 자체를 중시하여 소비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2022년 BMW는 플래그십 SUV X7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공개했다. 초대 X7은 딱 BMW의 전형적인 패밀리룩 디자인을 따랐지만, X7 LCI는 꽤나 진취적이고 개성적인 외모를 선보인다. 서론과 같은 이유로 플래그십 SUV의 변화라는 점에서 특히 파격적이다. BMW가 보수적인 브랜드 이미지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물며 M 브랜드 최초의 하이브리드라는 타이틀을 'XM'이란 SUV 모델로 출시하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 동향이 전동화, 무인화, 친환경화 등 변동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BMW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뚜렷하게 개작하고자 하는 듯 하다.
시승 차량은 BMW X7 LCI xDrive40i Design Pure Excellence (7인승) 트림이다. 40i 모델은 직렬 6기통 싱글터보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며,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본화 했다. 전자식 AWD 시스템과 에어 서스펜션은 또한 적용이다. DPE 트림은 M스포츠 패키지를 적용하지 않은 베이스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승차감 셋업이나 외관 디테일까지 보다 고급스러운 감각에 집중한다. 단순히 가격이 낮은 엔트리 모델이 아닌 취향에 의한 선택일 수 있다. 시트는 7인승을 기본으로 2열 독립시트 방식의 6인승도 제공한다.
BMW의 패밀리룩은 쿼드램프와 키드니 그릴로 구성되어 왔다. 서론의 내용처럼 전기형 X7도 동일했다.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한 페이스리프트 모델도 쿼드램프와 키드니 그릴의 구색만은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형태는 완전히 달라진다. 상하분리형 헤드램프는 쿼드타입 DRL을 슬림한 형태로 구현하며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버티컬 타입의 싱글프레임 그릴은 웅장하고 듬직한 분위기를 갖춘 모습이다. 범퍼 형상도 간결한 실루엣으로 플래그십 SUV만의 중후한 이미지를 더하며, DPE 트림에는 은은한 색감의 두꺼운 몰딩을 덧붙여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
측면 디자인은 상대적으로 간결하게 느껴진다. 차체 후방으로 밀려있는 A필러의 위치가 플래그십의 늠름한 비율을 구현한다. 프런트 펜더에서 테일라이트를 연결하는 사선형의 캐릭터라인은 BMW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듯하다. 여타 엔트리 SUV와는 다르게 바디 컬러 클래딩도 기본적용이라 차체는 더욱 커 보이고 고급스럽다. DPE트림에는 로커패널과 리어 범퍼에 크롬 몰딩을 부착하여 중후한 분위기를 더하기도 한다. 사실 사진상으로는 X7의 스케일 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데, 기본 휠이 22인치라는 부분을 감안하면 체급이 매우 큰 편이다.
뒷모습도 전면 디자인의 변화에 비하면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 테일라이트의 그래픽이 'ㄷ'자 형상으로 보다 예리하고 입체적으로 묘사된 차이가 있긴 하다. 테일라이트를 가르는 크롬 몰딩이 고급스러움을 자극한다. X7은 스플릿 테일게이트를 적용하고 있어서 차체 중심부에 분할선이 위치하는데, 리어 범퍼의 굴곡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트윈 머플러 팁은 마름모꼴 형상이고 가운데 두꺼운 가니시가 묵직한 SUV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후면 또한 사진보다는 실물로 보았을 때 크기로부터 전해지는 감각이 남다르다.
인테리어는 레이아웃을 유지한 채 많은 디테일을 다듬었다. 우선 매립형 클러스터를 포기하고, 14.9인치 크기의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병렬로 배치했다. Idrive8세대 소프트웨어를 적용하며 센터페시아에는 대다수의 버튼들을 생략했고, 여전히 센터콘솔에 i드라이브 다이얼이 마련된다. DPE 트림답게 스티어링 휠은 무난한 디자인이고, 패들시프트 적용과 함께 기어노브는 토글 식으로 변경된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에어벤트 디자인인듯 하다. 블레이드를 인터랙티브 바 뒤편에 잘 숨겼고, 무드램프의 X7 레터링이 인상적이다
SUV는 패밀리카 목적의 수요가 대부분인 만큼 2열 공간도 상당히 편안하다. 우선 파노라마 선루프로부터 전해지는 개방감이 우월하다. 이 파노라마 선루프의 가림막이나 2열 글래스의 전동식 선 셰이드는 뒷좌석 도어 암레스트에서 전부 조작할 수 있다. 센터콘솔 뒤편에는 독립 공조장치와 열선 시트 조작부가 위치한다. B필러에도 에어벤트가 위치하고 USB 포트와 컵홀더도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다. 역시 공간 자체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넓다. 차 폭이 넓다 보니 사진상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확실히 세단과 다른 공간적인 여유가 존재한다.
3열 공간도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우선 시트는 전동식으로 폴딩이 가능한데, 보통 4인승으로 활용하면 트렁크 공간은 충분하다. 3열 시트를 펼쳐도 꽤나 쓸만한 공간이 나와주는 모습이다. 스플릿 게이트는 짐을 적재하거나 차박 등 레저활동에도 참 편리할 듯하다. 원래 3열 시트는 레그룸이 너무 좁아서 거주성이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X7의 경우 2열 좌석을 전방으로 살짝만 밀면 편안한 공간이 마련된다. 놀라운 점은 오직 3열만을 위해 별도의 선루프와 독립 공조, 시트 열선, 컵홀더 등 편의 장비가 탑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X7은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전사양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기본화했다. 이 고전압 발전 및 구동 보조 장치는 부드러운 시동 감각을 전달해 준다. 터보 엔진의 이질감 극복과 에너지 효율 증대의 측면에서 MHEV의 역할은 확실하다. 실제 높은 폭의 출력 향상이 이뤄졌다. X7 LCI는 단지 외모를 다듬는데 그친 형식적인 페이스리프트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X7 40i 트림에 탑재된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은 싱글터보가 과급을 담당하고, 보통 일상 영역이라 하는 시내 주행에서는 굉장히 부드럽고 조용한 발진 감각을 나타낸다.
X7의 현가장치는 에어스프링으로 조율되어 있다. X5에 선행되었던 모듈형 섀시 지오메트리 CLAR을 활용했고, 전륜 더블위시본과 후륜 멀티링크로 약 2.6톤의 차체를 탄탄하게 지지한다. 에어스프링이 둥실둥실 거리는 부드러운 승차감을 위해 적용된 느낌은 아니다. 전자제어식 댐퍼 등 드라이브 모드 세팅을 통해 변화하는 하체 감각은 확실하지만, 기본적으로 휠 트래블과 롤링이 억제된 BMW의 안정적인 승차감이 우선시된다. 그래도 에어스프링을 통한 충격 및 진동 완화는 분명히 편안함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5단계의 차고 조절도 가능하다.
그런 X7의 섀시는 오너드리븐 SUV로써 정말 기분 좋은 승차감을 선사해 준다. 불쾌한 흔들림 없이 안락함을 유지하면서도 운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핸들링 감각이 인상적이다. 차체 전장이나 휠베이스가 상당히 길지만 전자식 사륜구동 Xdrive가 기본 탑재에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기능까지 도입된다. 즉, 차체 전장대비 회전반경이 상당히 짧고, 구동력 배분을 통해 노면을 끈끈하게 붙잡고 간다는 안정감이 생긴다. 이는 고속에서나 저속에서나 BMW가 승차감에 있어 좋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묵직한 스티어링 감도도 BMW의 매력이다.
다시 X7 40i에 탑재된 인라인 6실린더 엔진은 최고출력 381HP, 토크는 55Kg.m 수준의 성능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역시 ZF사의 8단 토크컨버터와 매칭된다. 평소에는 딜레마 존 이나 추월 등 일상적인 급가속에도 정숙하고 부드러운 피드백을 보였다. 부드러운 변속감도 마찬가지다. 신경을 안 쓰면 무단변속기 같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다소 묵직한 엔진음이 유입된다. 엑셀을 특정 깊이 이상 밟으면 꾀나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RPM이 매섭게 치솟는다. 110Kph 이상의 고속 영역에서도 묵직한 차체의 탄력이 붙으면 강력한 파워가 꾸준히 유지된다.
다운시프트를 하면 즉답적인 토크감과 울려펴지는 부밍사운드가 재미를 더한다. 일부 SUV 차량들은 다운시프트를 하면 불쾌함 진동과 소음이 유입되기도 하는데, BMW의 엔진과 변속기 세팅은 운전자의 무리한 주행에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듯 하다. 대형 SUV임에도 드라이빙이 마냥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펀 드라이빙은 세단이나 쿠페가 유리하겠지만, 플래그십 SUV만의 편안한 크루징 감각은 역시 패밀리카로써 X7의 메리트다. 여유로운 출력과 탄탄한 승차감, 신뢰할 수 있는 제동력 등 안전하고 안정적이다.
각종 전자장비의 완성도도 뛰어나다. 드라이빙 어시스턴트는 막히는 도로나 고속 주행에서도 꽤나 정확하고 힘 있게 반응했다. 브랜드 특징상 운전자의 피드백에 대해서 예민하게 요구하는 편이긴 하다. 만족스러웠던 점은 Ui의 변화다. 증강현실과 각종 카메라 모니터링을 통해 정말 적극적으로 길 찾기를 도와준다. 순정 네비게이션 화면 자체가 편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데, HUD, 네비게이션, 디스플레이까지 모든 인포테인먼트 장비가 상세히 길을 이끌어주니 헷갈릴 일은 없었다.
BMW X7 40ixdrive를 시승했다. SUV의 공간을 앞세운 플래그십의 여유가 인상적이다. 또한 기능적이든 감성적인 차원이든 드라이빙 감각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BMW는 그런 자사만의 헤리티지를 내세우며 긍정적인 브랜드 가치를 쌓아왔다. 다만 그런 브랜드 CI를 유지하기 위해 다소 편향되고 보수적인 제품성을 보인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해체주의적 디자인과 적극적인 디지털 인터페이스의 수용은 보다 적극적으로 트렌드에 대응하겠다는 브랜드의 의지로 느껴진다. 이따금 새로운 도전이 없는 기업은 발전도 없는 법이다. 이번 X7의 파격적인 변화도 결론적으로는 BMW에게 설득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