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3 유현태
메르세데스-벤츠의 중형 SUV 'GLC 클래스'가 이르면 7월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다. 신규 패밀리룩과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마일드 하이브리드 및 첨단 기술을 접목한 풀체인지 모델이다. GLC클래스는 출시 초기부터 대한민국을 비롯해 북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프리미엄 SUV다. 메르세데스의 스타일링과 넉넉한 실내 공간, 화려한 인테리어 트림이 조화를 이루며 한국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구성이었다. 엔트리 세단 C클래스와 플랫폼 아키텍처를 공유하면서도, 단점으로 지목되던 좁은 실내 공간에서 탈피한 것이다. 이번 3세대 GLC클래스의 판매 실적도 기대가 된다.
GLC클래스는 기존 메르세데스-벤츠의 준대형 SUV GLK클래스의 후속작이었다. 당시 메르세데스는 SUV 및 소형차 라인업을 보강하기 위해 작명법을 개편했다. 후륜구동 방식을 채택하는 가장 작은 크기의 SUV가 GL'C'라는 이름으로 확정된 것이다. 포지션상으로 GLK클래스와 겹쳤다. 다만 G 바겐을 떠올리게 하던 특유의 BOXY 디자인을 지닌 GLK클래스와 다르게 GLC클래스는 보다 대중적이고 관습적인 디자인으로 변모했다. 21세기의 SUV는 자동차 시장을 주도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차세대 GLK클래스의 수요층을 확장하고자 했다. 그 전략을 옳았다. 이후 최초의 세대교체 모델이 이번 GLC클래스 'X254'가 된 것이다. 차세대 GLC클래스의 디자인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초대 GLC클래스의 디자인은 당대 C클래스와 유사한 디자인 룩을 공유하고 있었다. 크기를 과시하는 엠블럼과 좌우로 뻗어나가는 DRL 그래픽이 세련된 이미지를 남겼다. 그리고 2019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SUV'만의 성격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헤드램프 그래픽과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의 변화다. 곡선형이나 6각형을 선택하던 세단 라인업과 다르게 윤곽선을 8각형으로 다듬으며 듬직한 분위기를 보강한다. 물론, 스포티한 감성을 지향하는 AMG 라인의 경우 그릴 윤곽선 형상은 달라진다. AMG라는 브랜드 자체가 온로드 성향을 강조한다. 때문에 SUV와 세단의 디자인 차별화를 반증하기도 한다.
SUV와 세단의 본질로부터 전해지는 디자인의 차이도 분명하다. 차체 하부를 감싸는 두꺼운 스키드 플레이트라던가 사이드 스텝, 크롬으로 고급감을 더하기는 했지만 범퍼를 감싸는 에이프런도 SUV의 본질에 집중한다. 휠 하우스의 크기나 지상고도 세단 라인업에 비해서는 훨씬 높기 때문에 껑충한 스탠스가 나타난다. 반면 화려한 LED 그래픽과 도어패널을 휘감는 캐릭터라인을 보면 누가 보아도 메르세데스답다. 후륜 구동 특유의 긴 보닛 길이와 곡선형으로 뻗어나간 윈도 라인도 고급스럽다. 굳이 SUV의 이미지를 배척하지 않고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스타일링 기법이 매력적이다.
차세대 GLC클래스는 보다 도심 친화적인 디자인을 택하고 있다. 전체적인 스타일링 자체가 C클래스 보다는 CLS클래스와 유사하다. 육각형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채택하고, 삼각형의 헤드램프 커버를 갖추되 라디에이터 그릴과 연결해버렸다. 소위 '앞트임'이라 표현하는 디자인이다. CLS클래스는 '감각적인 순수미'라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 철학을 새롭게 정의했던 아이콘이다. 파격적이고 스포티한 디자인 정체성을 추구했고, 매스컴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Young' 디자인을 추구하는 원론적인 목표는 달성한 듯 보였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는 단일 차종보다도 기업 단위의 이미지 관리에 집중하는 측면이 있다.
핵심은 GLC클래스가 오히려 C클래스보다도 도전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얇은 프레임을 지닌 6각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싱글 루브르 스타일을 C클래스와 동일하지만, 역삼각형 헤드램프가 가장 큰 차이다. 물론 정면 면적이 넓은 SUV의 특성상 헤드램프를 슬림 하게 디자인하면 여백이 많고 단조로워 보일 수 있다. DRL 그래픽을 최대한 수평선에 가깝게 배치하며 'WIDE'한 인상을 강조한다. 그리고 보닛이 눈에 띄게 낮아지는 형태로 역동적인 실루엣을 형성한다. 헤드램프가 프런트 펜더를 파고드는 형태로 에어 인테이크는 범퍼에서 돌출되어 있고, 여전히 두꺼운 에이프런이 SUV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당연 AMG라인 모델은 더 도심 친화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지향한다.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레이아웃은 동일하지만 그릴 윤곽선의 얇은 프레임을 검은색으로 도장했다. 덕분에 라디에이터 그릴의 크기는 더욱 커 보이고, 헤드램프와 그릴의 연결부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메시 타입으로 변경되는데 삼각별 형상의 패턴이 각인되어 있다. 중심부에 박혀있는 대형 엠블럼과 대비되며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한편 정면에서 바라보는 GLC클래스의 디자인은 타 SUV 대비 차체 전고가 낮고 전폭이 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AMG라인을 적용하면 범퍼의 형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밋밋한 모습으로 역할에만 집중하던 에어 인테이크는 두꺼운 루버가 부착되며 존재를 과시한다. 그리고 양측 에어 인테이크는 라디에이터 하단부의 얇은 틈을 가로질러 하나로 연결된다. 이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상이 돌출된 실루엣을 만들어 준다. CLS클래스가 갖추던 '샤크노즈' 스타일링 기법에 근접한다. 그리고 프런트 에이프런의 형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래도 SUV의 성격을 남겨두던 이전 세대의 AMG라인 모델에 비해 차세대 GLC클래스의 AMG라인은 SUV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내고 있다.
측면 디자인은 여전히 후륜구동 SUV의 우아한 비례 감각이 인상적이다. 보닛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은 높은 경사로 하향하는 느낌이었는데, 측면에서 바라본 결과 보닛 끝부분을 최대한 억누른 모습이다. 때문에 옆에서 바라보는 보닛의 길이는 매우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곡선형으로 상승하는 A필러와 미세한 각도로 포물선을 그리는 루프라인은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역력하다. 역시 완만하게 상승하는 벨트라인도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우아한 분위기에 일조한다. 길이가 짧은 프런트 오버행과 대비되는 연장된 휠베이스 또한 역동적인 비례를 위한 요건이다.
측면 디자인은 그래도 SUV의 성격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사다리꼴 형태의 휠 아치다. 물론 SUV는 바퀴의 기동성을 위해서라도 완벽한 타원형의 휠 아치를 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다. 최근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 트렌드는 측면 캐릭터라인을 지우는 것이다. 보통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잇는 한 줄의 캐릭터라인으로 실루엣을 정의하곤 한다. 반면 GLC클래스는 프런트 펜더와 리어 펜더에 각각 짧은 주름이 각인되어 있다. 이 주름은 앞뒤 휠 아치의 볼륨을 살리며 강조해 주는 효과가 있다. 바디컬러 클래딩 또한 AMG라인 전용 옵션으로 간주되는데 리어 범퍼는 인위적으로 플라스틱 가니시를 노출시켜 차체가 뒤로 갈수록 떠오르는 듯한 역동적인 비주얼을 그린다.
측면 디자인은 그나마 C클래스와 유사하다. 반대로 C클래스보다 안정적인 형상을 취하고 있다. 동일한 역삼각형 형태의 테일램프 커버를 선택했지만, 수평선과 동화되는 형태로 차폭을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 테일램프의 두께가 얇다는 점도 보수적인 이미지에 유리하다. 젊은 감각의 디자인답게 테일램프는 가니시로 연결되지만 크롬 몰딩은 생략된 점이 인상적이다. 테일라이트 그래픽은 면발광 형태로 큰 특징이 없어 보인다. 그나마 SUV의 우직함을 강조한 듯 보인다. GLC클래스와 몇 달 차이를 두고 공개된 GLC쿠페의 테일램프 그래픽은 훨씬 복잡하다.
AMG라인의 범퍼는 양측에 세로형 에어덕트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끝점을 연결하는 엣지 라인을 각인함으로써 와이드하고 일체적인 실루엣을 형성했다. 이번 GLC클래스를 비롯해 최근 메르세데스-벤츠의 후면 디자인은 캐빈 룸에 대비해 리어 펜더의 볼륨이 상당히 부풀려진 느낌이 든다. 트렁크 공간 확보를 위한 형태일 수도 있겠으나 탄탄하고 근육질적인 인상을 남겨주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범퍼에는 플라스틱 가니시가 인위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디퓨져 부근만 블랙 하이그로시로 마감한 모습이다.
변화의 폭은 익스테리어보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센터페이사와 콘솔을 연결하는 '폭포수' 구성의 레이아웃은 여전하다. 하지만 센터페시아에는 고해상도 대화면 디스플레이가 대다수의 물리버튼을 대체했다. 센터콘솔의 수납함까지 블랙 하이그로시 소재의 커버로 마감하면서 디지털 친화적인 분위기가 살아난다. 심지어는 스티어링 휠의 각종 버튼들 또한 터치 감응식으로 작동한다. 클러스터는 플로팅 타입을 선택했다. 대화면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적용하면서부터 클러스터의 시인성에 대한 중요성은 크게 강조되지 않는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백미는 역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엠비언트 라이트다. 크래시 패드의 마감재 빈틈 곳곳과 도어트림, 심지어는 에어벤트 내부에도 높은 광량의 LED가 내장되어 있다. 에어벤트는 항공기의 엔진룸 덮개 '너셀'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디지털 친화에 희생된 감성을 보완하는 오브제로 적격하다. 전체적인 대시보드 디자인이 앞서 공개된 C클래스와 거의 동일하다. 그래서 디자인에 대한 신선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세단보다는 공간적 여유로움이 있는 SUV인 만큼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GLC클래스와 GLK클래스는 가장 큰 차이는 대중성이라 설명했다. GLC클래스는 더 많은 소비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추구한다. 그 결과가 도심 지향적인 디자인이다. 실제 크로스오버를 소유하는 소비자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진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엔트리 클래스라 할지라도 '프리미엄'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상 비슷한 가격대의 선택지는 너무나 다양하다. 그래서 GLC클래스의 풀체인지는 또 한 번 도심 지향적인 성격을 강화했다. 최근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 트렌드를 적나라하게 따르고 오프로더의 성격은 일축했다.
SUV 치고 너무 도심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모습은 고집스러운 이미지로 다가올 수 있다. 반대로 GLC클래스의 사례는 수용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마케터의 입장에서 GLC클래스의 외관은 브랜드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터프함을 덜어내는 편이 나을 듯하다. 정통 SUV는 'G 왜건'이라는 서브 브랜드도 존재한다. 한편, 메르세데스-벤츠는 2030년까지 모든 라인업에 대한 전기차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GLC클래스의 풀체인지 모델이었다. 전기차 시대에서의 GLC클래스는 더욱 불확실한 정체성의 SUV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