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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무너진 벤츠 왕조, 하지만 ‘클래스’는 영원했다

단언한다. 2023년은 벤츠가 둘도 없는 치욕을 겪은 해였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지난해 브랜드별 신규등록 차량 집계 결과, 벤츠는 지난해 판매량 7만6,697대에 그치며 7만7,395대를 기록한 BMW에 밀려 ‘수입차 2위’로 주저앉았다. 비록 798대 차이였지만 국내에서 7년 동안 1위 자리를 독식해온 ‘벤츠 왕조’의 종말이었다.

BMW의 ‘역성혁명’이 성공한 배경에는 전례없는 ‘배수의 진’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신형 5시리즈를 출시한 BMW는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 공개행사를 진행하며 한국 시장에 대한 애정을 어필하는 한편, 통상적으로 신차는 할인을 하지 않는다는 시장의 불문율을 깨고 출시와 동시에 할인까지 진행하는 초 강수를 뒀다. 그 결과 ‘수입차 1위 브랜드’의 영광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BMW에게 밀려나 ‘2위 브랜드’가 되는 굴욕을 당했을지언정 ‘수입차 1위’는 여전히 흔들림없이 벤츠였다.

벤츠 E클래스는 지난해 판매량이 2만3063대를 기록하며 8년 연속 수입차 판매량 1위 차량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했다. 물론 신형 BMW의 공세에 맞서 수백만원의 할인을 감행한 결과이기에 조금은 빛이 바랬으나, BMW 5시리즈가 파격적인 프로모션에도 신형과 구형을 모두 합쳐 2만 1036대 판매에 그쳤던 것을 감안하면 8년 묵은 ‘구형’ 10세대 벤츠 E클래스의 판매량 1위 기록은 그야말로 ‘클라스’가 무엇인지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8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E클래스 신형이 출시된다.

 

▶독기 품고 돌아온 ‘왕의 귀환’ 8년만에 등장한 11세대 E클래스

오늘 (24년 1월 19일) 벤츠는 서울 코엑스에서 11세대 풀체인지 신형 E클래스, '더 뉴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W214)'[이하 신형 E클래스]을 공식 출시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마티아스 바이틀 대표는 “올해에는 새로운 인프라와 혁신적인 기술, 차별화된 브랜드 활동 등 기존에 없던 고객 경험을 선사하고 시대를 선도하는 최상위 자동차 브랜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 나갈 것” 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높으신 분들께서 말로는 무슨 말들을 못 하랴. 얼마나 가격을 올렸기에 저렇게 미사여구로 밑밥을 까시나이까 가격부터 살펴봤다. 그런데 어째 이상하다, 뭔가...뭔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세대 E클래스의 가격은 7050만원에서 1억2980만원의 구간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여러 매체에서는 신형 E클래스가 최소 10% 이상 인상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벤츠의 독기가 느껴진다. BMW에 밀린 분노 탓일까? 신형 E클래스의 E200 아방가르드가 7390만원부터 시작한다. 물론 할인이 들어갔던 지난 10세대 E클래스의 ‘끝물’ 실구매가에 비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상이지만 ‘출고가’ 기준 10% 이상 인상될 것이 예상됐던 것에 비하면 분명히 적은 인상폭이다.

6기통 엔진을 장착한 신형 E450 익스클루시브의 출고가역시 1억2300만원으로 지난 23년식 1억 1570만원 대비 6.5% 인상하는 데 그쳤다. 물론 계속해서 지난 10세대 E클래스가 ‘끝물 할인’을 했던 걸 다시금 상기시키지만서도 벤츠가 ‘못해도 10%는 올릴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을 상회하는 처절한 독기를 품은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독기’를 가득 품고 나온 신형 E클래스는 무엇을 준비해서 돌아왔을까?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벤츠
본디 칼날은 미소 뒤에 숨긴다 했던가. 진하게 품은 독기와 대조적으로 신형 E클래스의 디자인은 기존의 디자인에 곡선을 가미해 인상이 다소 부드러워진 느낌이 든다. 차량의 ‘눈매’라 해도 과언이 아닐 헤드램프가 이전 세대에서 직선으로 날렵했던 모양새였다면, 신형 E클래스는 여기에 곡선을 더해 한층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벤츠 차량 최초로 발광 라디에이터 그릴을 유료 옵션으로 채택한 점도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신형 E클래스는 미세하게나마 덩치를 키웠다. E 450 4MATIC 익스클루시브 기준, 전장x전폭x전고가 4955mm x 1880mm x 1475mm의 크기로 전 세대의 4940x1850x1470 대비 각각 15mm x 30mm x 5mm 증가했다. 이전 세대 대비 휠베이스도 20mm 증가했고 2열 레그룸은 최대 17mm , 2열 너비는 뒷좌석 너비도 25mm 넓어졌다. 다만 트렁크 용량만은 이전 세대와 동일한 540L다.

파워트레인은 전 라인업이 내연기관 엔진에 48V 온보드 전기 시스템을 갖춘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또는 4세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구성됐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2세대 통합 스타터 제너레이터(ISG, integrated starter-generator)를 통해 최대 17 kW의 출력을 추가 제공한다.
하지만 이번 신형 E클래스의 가장 궁극적인 변화는 ‘소프트웨어’다.

벤츠가 2025년경 선보일 전용 운영체제 MB.OS의 선행 버전인 3세대 MBUX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했다. 중앙 디스플레이와 동승자석 디스플레이가 이어진 MBUX 슈퍼스크린은 카메라를 기반으로 한 첨단 프라이버시 기능을 통해, 동승자석 탑승객은 주행 중에도 동승자석 디스플레이에서TV 또는 영상 스트리밍 등을 시청할 수 있다.

운전자의 ‘한눈팔기’를 조장하는 위험천만한 기능 아니냐고? DLC(dual light control) 시스템은 동승자석 디스플레이에서 동영상 등 다이내믹 콘텐츠가 작동할 경우 운전자 쪽에서 보이지 않도록 조치한다. 또한, 카메라를 통해 운전자의 눈동자 움직임을 파악하여, 운전자가 동승자석 디스플레이의 영상 콘텐츠를 바라보는 것을 감지하면 화면의 밝기를 추가로 줄여 운전자의 주의력이 분산될 위험을 줄이는데 도움을 준다. 비록 E 300 4MATIC AMG 라인과 E 450 4MATIC 익스클루시브에만 기본 탑재되고, 나머지 트림에서는 옵션으로 선택해야 하지만.

그렇다면 운전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뭐가 좋아졌다는 걸까?

축하한다, 이번 신형 E클래스부터 벤츠도 티맵 네비게이션이 기본 탑재된다. 볼보와 BMW가 티맵을 적용하고 호평을 받았던 국내 소비자 반응을 적잖이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반가운 변화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는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에 최적화된 차량용 내비게이션 티맵 오토도 순차 업데이트 적용할 예정이라고.

티맵보다도 더 궁극적인 ‘맞춤형 서비스’또한 준비해 돌아왔다. 신형 E클래스는’ 운전자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편의 기능을 자동화하는 ‘루틴(routine)’기능을 새롭게 추가됐다.. 이 기능을 통해 운전자는 온도 설정, 앰비언트 라이트, 오디오, 주차 카메라 등의 차량 기능을 날짜 및 시간, 위치, 내외부 온도, 차량 속도 등 자신이 원하는 특정 조건과 연결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편의 기능을 자동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바깥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면 시트 열선을 자동으로 켜고 앰비언트 라이트를 주황색으로 설정하라”와 “차내 온도가 23도 이상이 되면 핸들 열선을 꺼라” 등의 조건에 따른 작업 설정이 가능하며, 이와 같은 루틴을 “차를 따뜻하게 해줘”와 같은 임의의 명령어로 지정할 수도 있다. 표준 루틴 템플릿을 사용은 물론, 스스로 루틴을 생성해 나만의 루틴을 커스터마이즈 할 수도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많은 차주들이 차량의 높은 반응성을 두고 차량과 ‘일체화’되며 ‘교감’하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즐겨쓴다. 현 시점에서 이보다 더 디테일한 교감이 존재할 수 있을까? 벤츠는 궁극적으로 반복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인공지능(AI)이 운전자 성향을 파악해 자동으로 운전자 맞춤형 기능을 추천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프트웨어적 장점을 얘기한 김에 최신 버전 주행 보조시스템인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 플러스가 전 라인업에 기본 탑재된 것 또한 호평해주고 싶다. 앞차와의 간격 유지 및 자동 속도 조절, 제동 및 출발을 지원하는 [액티브 디스턴스 어시스트 디스트로닉], 최대 100km/h의 속도 범위 내에서 도로 위에 정지되어 있는 차량에 반응해 제동을 돕는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 360도 카메라를 통해 차선을 감지하는 [액티브 스티어링 어시스트] 측면 충돌 감지 시 사이드 볼스터를 부풀려 앞 좌석 탑승자를 보호하는 [프리-세이프 임펄스 사이드] 시스템 기본 탑재는 분명 반가운 요소다. 통크게 독기 품은 김에 리어 액슬 조향각 제한도 풀어줬으면 오죽 좋았으련만.

▶E클래스 선두로 신모델 파상공세 예고한 벤츠
벤츠는 이번 신형 E클래스 출시를 시작으로, CLE 쿠페와 CLE 카브리올레를 올 상반기에, 그리고 순수 전기 SUV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EQS SUV’와 G-클래스 최초의 전동화 모델인 ‘전기 구동 G-클래스(G바겐)’를 하반기에 출시하며 총 5개의 신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 외에도 하반기에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콤팩트 전기 SUV ‘EQA’ 와 ‘EQB’, 상반기에 ‘G-클래스’ 등 4개 차종의 부분변경 모델도 판매할 계획이다.

BMW에 밀려나 ‘대한민국 2위 외제차 브랜드’로 추락(?)하는 수모를 겪은 벤츠. 과연 벤츠는 신형 E클래스를 선봉장으로 ‘BMW의 봄’을 일장춘몽으로 만들고 또다시 장기집권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 거의 없는 덤 이야기
: BMW는 '5 시리즈'는 왜 이름을 숫자 5로 지었을까? 알고봤더니 '벤츠' 때문?

차돌박이

shak@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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