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0 유현태
캐딜락의 준대형 SUV이자, 순수 전기차 리릭이 대한민국에 정식 출시되었다.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산업 빅3 GM 계열에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다.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 역사적 호황기를 누리던 당대 미국의 부의 상징과 같았다. 하지만 뒤이어 도래한 중동 전쟁의 여파는 고배기량 중심의 과시적인 자동차 문화를 침체시키게 된다. 그 이후 GM은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를 캐딜락 브랜드의 변곡점으로 삼고자 했다. 그간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 소외되었던 인식에 절치부심한 듯, 파격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장비들로 무장하여 고급화 전기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2020년, 캐딜락은 순수 전기 플랫폼 기반의 전기 SUV '리릭' 콘셉트를 공개한 바 있다. 이후 유출된 양산형 리릭의 디자인은 컨셉트 카와 거의 동일한 외모로 화제가 되었고, 2022년 북미 시장에 정식으로 데뷔한다. 한국 시장에는 2024년 '스포츠' 단일 트림으로 정식 시판이 시작되었다. 양산형 리릭은 GM 그룹의 BEV3 플랫폼을 기반으로 설계되며, 해당 플랫폼은 한국의 LG그룹 계열의 많은 전장 부품이 탑재된 바 있다. 리릭의 출시 이후 캐딜락은 자사의 전기차 차명을 'Iq'로 마감하는 작명법을 이어나가고 있다.
리릭의 디자인은 날카로운 직선들이 교차된다. 20세기 초 캐딜락의 차세대 디자인 철학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었고, 그런 의도가 담긴 예리한 선의 조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전기 차인 만큼 라디에이터 그릴이 빠지며 '블랙 크리스탈 실드'가 자리 잡고, 화려한 시그니처 그릴 라이팅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지닌 '디지털 레인'헤드램프는 신비함의 정점이다. 측면 디자인은 절제된 선과 면이 느껴지며, 패스트 백 형상의 리어엔드 디자인과 테일램프가 창의적이다. 역시 화려한 그래픽의 테일램프, 그리고 윈드 터널을 통합시킨 범퍼 형상이 인상적이었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그래픽의 라이팅 퍼포먼스가 일단은 이목을 집중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끝에 점등되는 엠블럼과 날개 형태의 LED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밋밋해 보이는 측면 형상은 보다 상징적인 전면 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실물로 보면 C필러 상단의 LED 그래픽도 꽤나 길게 뻗어 있다. 반면 유선형으로 내려오는 D필러, 그리고 이를 감싸는 테일램프 형상이 차세대 캐딜락의 진취성을 강조해 준다. 아무렴 어떠한 측면에서든 강렬한 존재감을 내비치는 리릭이었다.
실내 디자인은 화려함 그 자체와 같다. 클러스터 통합형 33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로 인포테인먼트 체계를 구축하고, 9K 초고화질 기반 UI 그래픽까지 상당히 정교했다. 반면 버튼 식으로 구성된 센터페시아는 북미 고급 차량들이 추구하는 직관성이 잘 느껴진다. 기어 노브도 다이얼 방식, 고급스러운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은 자사의 올드카 '드빌'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센터 콘솔이나 나파가죽 시트 등 실내 마감재의 고급감이 사치스러운 수준이다. 엠비언트 무드 램프나 AKG 프리미엄 사운드 등 화려한 감성 요소들로 가득 채워진다.
뒷좌석 공간이다. 레그룸은 적당한 수준으로 거의 평탄화가 이루어져 있다. 헤드룸도 평범한 수준으로 확보했지만 광활한 파노라마 선루프의 개방감이 인상적이다. 편의 장비로는 독립 공조와 시트 열선 등이 보이고, 암레스트 컵홀더 같은 기본 장비들이 있다. 나파가죽 시트의 고급스러운 질감이나 스피커, 그 외에 문 손잡이가 도어 암 레스트에 위치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리어 시트보다 트렁크 공간이 더욱 깊고 넓게 느껴졌다. 매트 아래에는 조그마한 수납공간이 있고, 2열 리모트 폴딩과 러기지 스크린이 구성되어 있다.
EV 단일 사양으로 출시된다. 전 후륜 총 두 대의 모터와 감속기가 탑재되어 높은 토크를 배분하고, 전자식 사륜구동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공차중량이 2.7톤에 준하지만 제로백은 4초대에 머무는 즉답적인 출력이다. 5:5에 가까운 중량 비로 코너링 성능을 확보하고, 고중량에 대응하여 서스펜션 셋업은 물렁하지 않은 편이라 한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으로 정숙성을 더하고, 스티어링 휠 패들을 통한 회생 제동 및 정차가 가능하다. 전력량은 102Kwh, 항속거리는 465Km다. 무선 BMS를 채택하여 최적의 배터리 컨디션을 유지하며, 10분 충전 시 120Km의 주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브랜드의 신규 전기차라 하면 혁신 기술을 우선적으로 소구하게 된다. 하지만 캐딜락의 리릭은 그런 전기차로서의 관심보다도, 역사를 반영하고자 하는 심미성에 먼저 흥미가 생겼다. 캐딜락의 암흑기는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하던 경영 전략에 의거했다. 다만, 그 앞은 전성기였을 것이다. 고급차에 바라는 과시욕, 내지는 화려함을 가장 면밀하게 이해하는 브랜드였을지 모른다. 동력계가 간소화되는 전기차 시장은 재래식 산업에 비해 기술 장벽이 낮다고 평가된다. 어쩌면 '보여지는 것'이 더욱 중요시되는 산업일지 모르는 만큼 캐딜락의 미래가 기대된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