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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동차 메이커들은 배기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줄어든 배기량은 터보차저로써 보완하지요. 작은 엔진으로 고성능을 냄에 따라 고품질 연료에 대한 니즈도 커지고 있습니다. 고급 휘발유를 찾는 이가 늘어나는 게 증거입니다.

일반 휘발유와 고급 휘발유의 핵심적인 차이는 옥탄지수입니다. 점화플러그가 스파크를 일으키기 전에 폭발해버리는 이상 점화, 이른바 노킹 방지 정도에 따라 옥탄지수가 서로 차이납니다. 간단히 옥탄가가 높을수록 노킹 일어날 확률이 줄어든다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경유의 사정은 어떨까요? 디젤 엔진의 연료인 경유도 과거 '일반 경유'와 '고성능 경유'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휘발유와 차이점이 있다면 옥탄지수가 아닌 세탄지수를 기준으로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세탄지수는 경유의 착화성, 다시 말해 스스로 불이 붙는 정도를 수치화한 값입니다. 가령 세탄지수가 높을수록 연료 효율성이 좋아집니다. 연료가 잘 탈수록 더 많은 폭발력을 낼 수 있죠. 아울러 배출가스를 줄이고 연비도 상대적으로 잘 나오는 효과가 있습니다.

2006년, SK 에너지와 GS 칼텍스는 서로 경쟁하듯 고성능 경유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13년이 지난 오늘날 고성능 경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출력과 연비를 개선하고 친환경성까지 갖춘 고성능 경유. 장점 투성이인 이것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 이유로 가격을 들 수 있습니다. 디젤 승용차를 타는 이들은 대체로 유류비에 민감합니다. 소음과 진동을 감수하더라도 가솔린 엔진보다 좋은 연비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국회 연구 자료에 따르면 고성능 경유의 연비 향상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 경유에 비해 최대 1% 좋게 나올 뿐이었습니다.

대신 값은 L당 50~70원 비쌌습니다. 70L 연료 탱크에 가득 주유한다고 가정하면 일반 경유는 8만6,800원이 들지만(L당 1,240원 기준) 고성능 경유는 9만1,700원이 듭니다(L당 1,310원). 한 달에 두 번씩, 일 년 동안 주유하면 11만7,600원 차이가 나죠. 결국 기름값 더 내고도 연비 개선 효과는 없다는 것이 고성능 경유가 사라지는 시발점이 됐습니다.

지금보다 환경 문제에 덜 민감했던 것도 주요 원인입니다. 실제로 고성능 경유는 유해 배출가스를 상대적으로 적게 내뿜었습니다. 지식경제부 조사에 따르면 수치 상 일반 경유에 비해 12.65~15.65% 개선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클린 디젤 정책에 의해 디젤 승용차 붐이 일 때였습니다. 더불어 팍팍해지는 유로 규제 덕분에 배출가스 후처리 장치 성능이 대폭 개선되던 시점이기도 했죠. ‘디젤은 깨끗하다’라는 인식이 자리잡을 무렵, 굳이 고성능 경유를 넣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깨끗하다고 하니까요.

초저유황경유 법제화도 한몫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 경유 내 황 함유량을 30ppm 미만으로 줄이면 유해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2006년 1월부터는 의무 판매까지 이뤄졌죠. 결국 초저유황경유 도입 덕분에 디젤 엔진은 환경 문제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능 개선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정유사측은 출력 2.5% 이상, 가속 성능 8.2% 이상 개선할 수 있다는 홍보 자료를 내놨습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과대광고로 밝혀졌습니다. 실제로는 0.1~3.3%의 효과만 있었을 뿐이라고. 실제로 고성능 경유를 사용하는 이들도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고속 영역에 이르면 엔진 회전이 부드러워진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2010년 무렵, 우리나라에서 고성능 경유는 결국 사라졌습니다. 일반 경유와의 차이가 또렷하지 않아 찾는 이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외국에서는 '프리미엄 디젤'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디젤 엔진의 환경 오염 문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면서 말이죠. 어쩌면 우리나라도 디젤 규제가 심화되는 가운데 언젠가 고성능 경유를 다시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정현 기자

urugonza@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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