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8 이순민
조금 더 대중적인 자동차에 대해서 써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강행합니다. 왜냐고요? 아름답고 훌륭한 것은 많이 볼수록 좋으니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롤스로이스.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희소성을 지닌 코치빌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코치빌드는 독립된 부서로 재탄생했습니다. (롤스로이스의 표현에 따라) ‘Re-establishing’된 이 부서에서는 보다 희소성 있는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을 전담하죠.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 롤스로이스 CEO는 현존하는 제약을 넘어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 후원자들을 위해서 코치빌드 부서를 재건했다고 밝혔죠. 진정한 럭셔리 하우스로서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고객이 구성하고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기 위해서라고도 강조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험과 결과물을 선사하는 이 부서에서 하는 일이 코치빌딩입니다. 코치빌딩은 콘셉트 설계부터 디자인, 엔지니어링 등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차를 만드는 과정에 큰돈을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고객을 위해 존재합니다. 한마디로 맞춤 제작 방식이죠.
롤스로이스는 이러한 맞춤 제작 방식을 예술과 과학의 분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대량 생산 모델과 다른 희소성은 자동차를 만드는 과정과 탄생한 결과물이 예술과 과학의 경계와 더욱 밀접하게 맞닿아있을 만큼 특별하다는 거겠죠.
시작은 이렇습니다.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사진)가 처음 만났다고 알려진 1904년, 당시 영국에는 약 8,000여 대의 자동차가 등록돼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 50만 대 정도 등록된 마차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치죠. 하지만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자동차는 보편적인 개인 이동 수단으로 떠오릅니다.
개인 이동 수단으로 보편화되긴 했지만, 제조사들은 자동차를 그저 굴러가는 섀시 정도로만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섀시만 만들고 고객의 요청에 따른 보디 작업은 전문가인 코치빌더에게 맡겼습니다. 1920년 대에 접어들자, 대량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들은 코치빌딩을 조직 내부에 두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롤스로이스와 같은 럭셔리 하우스는 다른 길을 택합니다. 외부의 전문가에게 계속 맡깁니다. 몇 십 년 간요. 훌륭한 퀄리티를 보장하기 위해서였을까요?
그 당시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도록 하죠. 먼저 1926년 완성된 40/50HP 팬텀 I 브로엄 드 빌입니다. 사랑의 유령으로 불리기도 한 이 자동차는 런던에 거주하는 프랑스계 미국인 사업가인 클라렌스 워렌 가스크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울버햄프턴의 찰스 클락 & 손 유한 책임회사에서 선물한 거라고 합니다. 선물 한번 거하게 하네요.
외관만큼이나 실내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고풍스러운 마차가 떠오르지 않나요? 그도 그럴 것이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살롱의 로코로 분위기를 재현한 실내에 대한 의뢰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오르몰루 시계도 눈에 띄네요.
다음으로 17EX입니다. 17EX에 앞서 헨리 로이스가 고민했던 부분에 대해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는 아름다운 결과물로 이어지는 코치빌딩이 자동차의 성능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에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워트레인의 변화 없이 자동차가 무거워지고 커지면 성능이 떨어지겠죠? 그래서 개방적이면서 가볍고 늘씬한 보디에 기반한 팬텀을 만듭니다. 바로 10EX입니다. 공기 저항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새로운 인사이트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자동차 산업의 큰 도약 중 하나로 평가받는 모델입니다. 이러한 시리즈의 다섯 번째 모델인 17EX는 1928년 완성되었습니다. 시속 90마일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팬텀 II 콘티넨털 드롭헤드 쿠페. 1934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죠. 롤스로이스는 현재까지 만들어진 보트 테일 코치빌드 작품 중 가장 이국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모델 중 하나로 팬텀 II 콘티넨털 드롭헤드 쿠페를 꼽습니다. 특히 후면의 유려한 곡선은 광택 처리된 데크의 날카로운 모서리까지 올라갑니다. 시간의 초월하는 역동적인 우아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만 더 살펴보죠. 1972년 선보인 팬텀 VI 리무진입니다. 현대적인 비스포크 컬렉션 자동차와 매우 비슷하게 대량 생산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수많은 고객의 요청 사항이 반영되었습니다. 매우 화려하고 라이프스타일을 포괄하는 사항을 토대로 비스포크 역량을 강조했습니다. 더 많은 잠재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아주 비싼 홍보 브로슈어 같은 역할을 했죠.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화병을 비롯해 최첨단 음향과 TV 시스템, 냉장고, 피크닉 테이블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쉼 없이 이어지던 예술 작업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2017년 가장 현대적인 새로운 코치빌드 모델이 다시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스웹테일. 고객은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요트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을 의뢰했고 롤스로이스는 우아하게 떨어지는 웨이스트 레일, 거침없이 이어지는 루프 라인으로 독특하면서도 대담함을 담아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치란 ‘자신이 관심 없는 분야에 타인이 돈을 쓰는 행위 전부’를 의미한다고. 제가 나열한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사치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롤스로이스만의 강점이 두드러집니다.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 롤스로이스 CEO는 자동차의 거의 모든 부분을 개인화할 수 있는 능력은 브랜드의 후원자가 롤스로이스를 찾아오는 주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특별함 그리고 거기서 발휘되는 희소성. 바로 이 가치가 롤스로이스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자 브랜드의 존재 당위성이 아닐까요. 기회를 엿보다 틈이 생기면 가장 최근에 발표된 새로운 코치빌드 모델 ‘보트 테일’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사진 / Rolls-Royce Motor Cars Press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