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0 유현태
제네시스의 '쿠페' GV80 페이스리프트를 촬영했다. 제네시스의 브랜드 독립 이후로는 공식적으로 최초의 '쿠페'라고 볼 수 있다. 기본 GV80에 비해 유려하고 감각적인 디자인 감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오직 멋을 위한 부가가치다. 원래 쿠페는 멋을 위해 실용성을 포기해야 하는 장르, 하지만 쿠페형 SUV는 기본적인 공간과 크게 자체가 크기에 포기보다는 '타협'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GV80 쿠페의 존재 의의에 대해 면밀히 느껴보고자 했다.
과거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의 브랜드화를 발표한 건 2015년이었다. 대략 8년의 시간 동안 제네시스는 자사만의 확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편이다. 엠블럼을 형상화한 크레스트 그릴이나 날개를 형상화한 두 줄 램프, 이를 최초로 적용한 SUV가 GV80이었다. 제네시스는 GV80의 디자인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언어가 '역동적인 우아함'이라고 설명한다. 차체가 지닌 멋스러운 비율과 뒤편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캐릭터 라인 등 고풍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우아함과 마치 스포츠카스러운 역동적인 실루엣을 보여주기도 했다.
쿠페는 이 '역동적인 우아함'을 묘사하기 위한 최고의 접근이라는 생각이다. 보통의 SUV는 본질적으로 실용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제네시스가 의도하는 맹목적인 역동성을 나타낼 수 없었다. D필러가 솟아있고 트렁크 공간, 특히 3열 거주성이 강조되는 GV80이 출시된 바 있다. 통상적으로도 SUV는 크고 듬직한 존재감을 갖추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그런 SUV의 정설을 타파하고 쿠페형 SUV라는 장르를 개척한 브랜드가 BMW였다. X6라는 모델이 쿠페형 SUV 계의 헤일로 카다. 이후 다수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X6를 벤치마킹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지향하는 제네시스가 보고만 있을 리 없다. 특히 GV80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나름대로 준수한 인지도를 쌓았다. GV80 쿠페는 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GV80 쿠페는 GV80의 페이스리프트 시기에 함께 공개되었다. 과감히 3열을 삭제하고, D필러를 스포츠카처럼 낮고 날렵하게 디자인했다. 물론 D필러 디자인만 변경된 게 아니었다. GV80 베이스 모델에 대비하여 훨씬 공격적이고 스포츠카스러운 드레스업이 추가된다.
GV80은 페이스리프트 이후 이중 메시타입 그릴이 적용된 바 있다. 스포츠 모델은 레이어드 아키텍처 그릴이 적용되면서 메시 두께가 얇아지게 되었다. 중후함보다는 날렵함이 강조되는 부분이며 크롬 색감도 어두운 편, 범퍼에는 에어 인테이크의 면적을 최대화하였다. 그 자체로 날렵하지만 그릴이 더욱 돌출되어 보이게도 한다. 전체적인 실루엣을 공격적으로 다듬어준다. 보통 SUV는 차체 보호를 위한 하판 '에이프런'이 두껍게 부착되는 반면, GV80 쿠페는 매우 얇은 모습이다. SUV의 특성을 지양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마저도 질감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무렴 쿠페형 SUV의 중핵은 측면 디자인이다.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역동적인 우아함'의 이상향을 담고 있다. 스포츠카의 기본 소양이라고 할 수 있는 롱 후드 숏데크가 구현되어 있다. 해치게이트 끝단을 립 스포일러 형태로 마감하면서 반전적인 실루엣을 형성하는 것이다.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를 연결하는 포물선 형태의 캐릭터 라인은 GV80과 동일하다. 이 캐릭터 라인의 역할은 보다 고풍스러운 인상을 남기기 위함이다. 쿠페 모델에만 적용되는 이 립스포일러 형태로 치솟는 데크가 포물선 형태의 라인과 대비되며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런 립스포일러 형태의 엣지라인은 뒷유리 면적을 좁혀주기 위한 역할도 담당한다. D필러의 끝 지점을 높임으로써, 쿠페만의 수려한 루프라인을 더욱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억지스러움이 없다. GV80에 비해 창문 면적도 훨씬 좁아진다. 특히 오페라글라스는 거의 없다시피 축소되었고, 2열 면적 자체도 많이 좁아졌다. 그만큼 거주성보다는 디자인 감성에 치중한다는 의도가 반영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점은 앞뒤 펜더를 강조하는 애슬레틱 파워라인이다. 보다 근육질적인 느낌으로 고성능의 감성을 더한다.
뒤에서 바라보는 실루엣도 매력적이다. 넓게 부풀려져 있는 리어펜더는 루프라인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도록 유도한다. 매우 탄탄한 인상이다. 뒷부분 차체 형상은 경주마의 말발굽을 형상화한 형태인데, 후방 디자인의 개념이 없던 오래전 스포츠카의 캠백 스타일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일말의 고전미가 느껴지는 편으로 해석하겠다. 슬림한 윤곽선을 강조하는 쿠페는 대부분 수평 형태의 테일램프를 채택한다. 그와 더불어 범퍼 형상이 입체적으로 다듬어졌고, 오각형 형태의 머플러 팁은 GV80 중 쿠페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된다.
그런 디자인의 차이가 직시적인 GV80 쿠페의 존재 의의다. 물론 실내 디자인도 차별점이 있다. GV80 페이스리프트는 매립형 클러스터 디자인을 철회하고, 27인치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적용한게 차별 포인트 였다. 그렇게 넓고 긴 인스트루먼트 패널이 적용되는데, GV80 쿠페에는 카본 인테리어 트림을 적용할 수 있다. 센터페이사와 콘솔까지 카본 인서트 트림으로 구현되며, 스티어링 휠은 'D'컷으로 변경돤다. 그립이 상당히 두껍다. 이 외 레드 스티칭과 시트벨트, 퀼팅 패턴까지 스포티함을 표현하는 구성이다.
쿠페의 단점은 2열 공간이다. 실내 공간을 평가하는 레그룸이나 헤드룸 자체는 여유로운 편이다. 시트 등받이 각도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조작 가능했다. 다만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파노라마 선루프의 면적을 줄이고 헤드룸 부분만 천장 두께를 줄인 바 있다. 때문에 시야가 답답한 느낌은 분하다. 키가 큰 성인이 앉기에 편리하진 않고, 절대적인 불편함보다도 GV80 베이스 모델과의 상대적 불편함이 4인용으로는 큰 아쉬움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 하지만 주로 아이가 탄다거나, 주로 오너 드리븐 용도라면 수용할 수 있는 단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체급이 있는 만큼 다양한 편의 장비를 추가할 수 있다. 2열 시트에도 통풍과 열선 시트가 적용되며, 독립 공조 또한 추가되어 있다. 수동식 선 커튼도 탑재된다. 시트 퀼팅과 스티칭 패턴은 동일하게 들어가며, 암 레스트에도 레드 스티칭 패턴을 추가하는 등 차별화에는 신경 쓴 흔적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공간에서 손실을 보는 건 트렁크다. 생각보다 매트 높이도 높아서 러기지 스크린을 펼치면 많이 협소한 공간이 된다. 매트 아래 잔여 공간도 꼼꼼하게 마감했지만 실용성이 떨어진다. 대신 2열 시트 폴딩은 전부 전동식으로 동작했다.
계속해서 '쿠페'이자 공격적인 디자인을 추구했다고 설명해 왔다. 실질적으로 3.5 가솔린 터보 트림은 동일 사양 GV80과 엔진 스펙이 동일하다. 물론 상시 사륜구동과 전자식 후륜 차동기어, 20인치 휠이 기본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일반 GV80도 옵션 선택이 가능한 내용이다. 대신 출력을 35마력 가량 향상시킬 수 있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트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차이긴 하다. 시승 차량은 3.5 가솔린 터보, 결과적으로 쿠페만의 차별점이라면 전용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 기능과 브레이크 답력 조절 기능이다.
승차감 자체가 GV80 베이스 모델과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작은 요철과 진동은 가볍게 흡수하고 소음을 억제하는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보인다. 반면 깊은 요철이나 방지턱에서는 섀시가 제법 탄탄하게 조율된 감각이었는데, 쿠페라 하여 더욱 유의미한 차이가 느껴지진 않은 것이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댐퍼의 감쇠력이나 스티어링 휠의 감도가 훨씬 묵직해진다는 게 체감 간다. 단단한 승차감으로 무거운 차체를 지지하는 느낌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 특히 급격한 코너링에서도 자세가 잘 잡혀있는 감각이었다.
대신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의 우렁찬 효과음은 운전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다. 결과적으로만 따져보자면 쿠페만의 섀시 세팅이 따로 부담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보다 하드코어 한 드라이빙 머신을 원한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지만, SUV의 형태로는 물리적 한계가 있으니 세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즉, GV80 쿠페의 존재 의의는 역시 디자인 감성이다. 같은 GV80이라도 더욱 저돌적이고 존재감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고, 또 같은 SUV라도 보통의 SUV는 탐내할 수 없는 매혹적이고 수려한 디자인을 지닌 것이다.
말 그대로 타협점이다. SUV의 보수적인 외관에 비해서 훨씬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스타일을 누릴 수 있고, 세단보다는 넓고 여유로운 쿠페의 감성을 지니고 있다. 반대로 SUV에 좁고 세단에 비해 거동이 불리한 것도 사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타협'이 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수요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그만큼 희소성과 부가가치가 더해지는 법이다. 서론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최초의 쿠페라고 언급했다. 최초가 엉성함이 되지는 않았다.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언어를 가감 없이 누릴 수 있는 선택지가 추가된 셈이다.
GV80 쿠페의 존재 의의에 대해 알아보았다. 수요보다도 상징성이 큰 차종이다. 제네시스가 진정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고자 한다면, 자사의 퍼포먼스를 담은 컨셉트카가 아니라 실제적인 양산차량, '헤일로 카'를 시판해야 했다. 소비자와의 진지한 소통이다. GV80 쿠페에 대한 투자 성과는 단지 금전적인 수익보다도 브랜드 인식 개선에 편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변적으로 GV80 쿠페의 디자인은 멋있다. 대한민국에서도 누군가의 드림카가 될 수 있는 쿠페형 SUV가 출시했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