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이순민
지난주 영화 ‘스턴트맨’ 시사회에 당첨됐습니다. 극중 조디로 열연한 배우 에밀리 블런트가 이 영화를 ‘전통적인 스턴트에 대한 러브레터’같다고 표현한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최애 배우 해리 케 아니, 라이언 고슬링보다 기억에 남는 건 스턴트맨 출신 감독이 만드는 도파민 터지는 화끈한 액션이었으니까요. 특히 자동차를 활용한 액션이요.
스턴트맨은 캐논 롤 신기록 달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영화인데요. 캐논 롤은 자동차 아래에서 폭탄을 터트려서 차를 회전하게 만드는 고전 스턴트 기술입니다. 종전 최고 기록은 영화 ‘007 카지노 로얄’의 7바퀴였는데, 스턴트맨은 차를 8바퀴 반을 뒤집어 버렸습니다. 라이언 고슬링은 캐논 롤 촬영 날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날이었다고 말했었는데 관객 입장에선 눈이 즐거울 따름이었습니다. 마석도의 펀치도 시원시원하지만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데에는 자동차만 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물리 법칙을 아득히 벗어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겠죠.
스턴트맨과 결은 다르지만 기억에 남는 자동차 액션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화 ‘블리트’의 추격 신(Scene). 스피드광이었던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1968년 영화인데요. 화려하게 터지고 돌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 속 자동차 액션 시퀀스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데, 겉치레는 걷어내고 추격 본연에 집중하는 조용한 긴장감 속에 배기음과 함께 슬며시 전해져 오는 격렬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스티브 맥퀸이 만들어낸 놀라운 장면을 당시로썬 파격적인 촬영과 편집으로 담아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질주하는 머스탱의 자태가 아름다웠죠.
사실 머스탱은 블리트뿐만 아니라 본드걸의 빨간 야생마(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부터 자동차 절도단이 훔쳐야 할 최종 목표(식스티 세컨드), 전설적인 킬러의 애마(존 윅) 등 수많은 영화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왔습니다.
올해로 탄생 60주년을 맞이한 머스탱. 1964년 첫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생산 중단 없이 전 세계에서 1000만 대 이상 판매된 자동차입니다. 출시 당시 판매 목표였던 연 10만 대를 3달 만에 달성한 머스탱은 1년 6개월 만에 100만 대가 넘게 팔리며 큰 성공을 거두며 포니카의 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머스탱은 아메리칸 머슬카의 대표적 모델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시작은 조금 다릅니다. 미국에서 스포츠카는 주로 큰 차체에 8기통 엔진을 얹은 크고 강력한 자동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었죠. 당시 포드의 부사장이었던 리 아이아코카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보다 대중적인 머슬카를 기획했고, 팔콘을 기반으로 콤팩트한 차체에 고배기량 엔진을 장착한 멋진 디자인의 ‘작은 머슬카’를 만들어냈습니다. 기존 머슬카와 구분하기 위해 포니카로 불린 머스탱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머스탱의 인기는 쉐보레의 카마로와 닷지 챌린저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내연기관 모델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 가는 건 머스탱뿐입니다.
기대 이상으로 성공을 거둔 1세대에 이어 10년 뒤, 머스탱은 몸집을 줄이고 연비를 개선하며 효율성을 갖춘 2세대로 돌아옵니다. 오일쇼크로 인한 다운사이징의 흐름에 어쩔 수 없는 변화를 강행했지만 4년 만에 3세대로 넘어가게 되죠. 3세대는 포드의 폭스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 특징입니다. 일각에선 미국보단 유럽의 색채가 짙게 반영된 결과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수입되어 판매되기 시작한 4세대는 현대적인 스타일을 정립한 모델로 알려져 있는데요. 포드 배지 대신 야생마, 3분할 후미등 등 1세대 머스탱의 디자인을 다시 가져온 모델이기도 합니다. 5세대에 이르러서 머스탱은 레트로 룩을 완성합니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유려한 라인 대신 곧게 뻗은 직선을 강조한 ‘미쿡’스러운 디자인은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립니다. 누적 900만 대(2008년)를 돌파한 때가 이 시기입니다. 이 기세를 몰아 6세대는 트렌드에 부합하는 스타일을 선보입니다. 성능과 효율성을 고려한 엔진 구성의 변화도 가져갑니다. 그리고 9년 만에 등장한 7세대 ‘올-뉴 포드 머스탱’. 반세기가 넘는 헤리티지를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온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머스탱은 이제 다음 60년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올해 초 한국에 출시된 7세대 머스탱은 가장 많이 회자되는 초대 머스탱의 디자인적 특징을 계승하면서도 세대를 거듭하며 발전해 온 변화도 잊지 않은 모습입니다. 가로로 길게 뻗은 전면 그릴의 대담함은 3분할 LED 헤드라이트의 화려함과 함께 1세대의 멋을 미래지향적으로 다듬은 느낌입니다. 더 날렵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과 짧아진 리어 오버행도 옛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전투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12.4인치와 13.2인치의 디스플레이의 끊김 없는 연결 위에 구현되는 그래픽은 그 무엇보다도 미래지향적이지만 매력적입니다. 뱅앤올룹슨의 다양한 기술을 담은 12개의 스피커는 풍부한 사운드를 실현하고, 후방 레이더로 움직임을 감지하고 경고하는 엑시트 워닝 기능과 코-파일럿 360 어시스트 플러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전방위로 주행을 지원하는 기능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밖에 전자식 드리프트 브레이크를 비롯해 리모트 레브(탑승하기 전 외부에서 배기음을 들을 수 있는 기능), 포니 퍼들 램프처럼 소유와 주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줄 디테일도 가득합니다.
무엇보다 파워풀한 성능도 잊지 않았습니다. 5.0L GT 모델은 4세대 코요테 V8 자연흡기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 출력 493마력, 최대 토크 57.0kg.m의 주행 성능을 발휘합니다. 코요테 엔진에 듀얼 에어 인테이크 박스와 듀얼 스로틀 보디 디자인을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캠샤프트의 내구성을 높이고 냉각 성능도 개선해 우수한 주행 성능을 지속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제조사의 설명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머스탱은 우렁찬 배기음 하나로 다른 단점을 상쇄하는 차라고. 가성비를 따지며 효율적으로 사는 게 미덕인 세상에서 머스탱도 어느 정도 타협을 했지만 초심을 잃진 않은 모양입니다. 이젠 홀로 아메리칸 머슬을 담당하는 머스탱은 낭만을 위한 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착오적일지라도 그 멋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반박 시 님 말이 다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