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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4월 28일 서울 올림픽 공원 특별전시관에서 아주 특별한 신차 발표회가 열렸다. 김석준 쌍용그룹 회장, 이현재 전 국무총리, 김만재 포철회장 뿐 아니라 고척(Gottschack) 벤츠 부회장까지 모였다. 바로 쌍용차의 이스타나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말레이시아어로 ‘왕궁’을 뜻하는 이스타나답게 신차 출시장소는 화려했다. 다목적 상용차라는 개발컨셉에 맞게 용도별로 4가지 전시코너를 꾸며 이스타나의 거주성과 안전성을 강조했다. 축하공연은 탤런트 클라라의 부친이 이끌던 그룹 ‘코리아나’가 맡았다. 지금도 학원차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데에는 베이스 모델이었던 벤츠의 버스형 원박스카 MB100의 탄탄한 설계가 뒷받침된 결과다.

MB 100 D, Kombi, 1987.

이스타나가 데뷔했던 1995년의 국내 상용차 시장은 현대 그레이스와 기아 베스타가 양분하고 있었다. 이스타나는 MB100을 기본 토대로 실내외 디자인을 완전히 바꿨다. 이렇게 바꾼 실내는 상당히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인력수송용으로 9, 12, 15인승을 선보였고, 다용도 모델로는 2, 6인승 밴을 내놨다. 특수차로 앰뷸런스와 오피스 타입의 개조모델과 캠핑용차도 선보였다. 당시 이스타나 디자인을 맡았던 쌍용자동차 기술연구소 디자인실장 박경수씨는 “현재의 스타일을 기본으로 다양한 버전이 개발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스타나의 다양한 수요를 초기부터 염두에 뒀음을 밝혔다.

프레임 바디타입의 이스타나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승용차의 안전등급을 적용해 소비자들에게 안전성을 강조했었다. 엔진은 벤츠로부터 들여온 95마력을 내는 2.9L 디젤엔진(OM662)과 4단 수동변속기를 탑재했다. 최대토크는 19.6kg.m였으며, FF방식을 채택해 실내공간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가격은 9, 12, 15인승이 각각 1,056만원, 1,071만원, 1,249만원이었다. 2, 6인승 밴은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를 타겟층으로 내놓아 조금 저렴해 878만원, 899만원이었다.

이스타나가 전국의 쌍용차 매장에 등장한 것은 1995년 7월부터 였다. 당시 손명원 쌍용차 사장의주도하에 개발된 4년간 2,500억원을 들여 개발된 이스타나는 연간 5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경기도 송탄의 공장에서 생산됐다. 최종 생산은 2002년에 2003년식 모델을 생산하는 것으로 종료됐다.

쌍용자동차는 국내에서 이스타나를 단종시키면서 2003년 1월 중국 상하이(上海)자동차그룹의 계열회사인 상하이후이쭝(Shanghai Huizhong)과 이스타나를 현지조립생산(CKD) 하기 위한 정식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일명 ‘먹튀’논란에 휩싸였던 2009년 전 까지 총 7만대 가량 판매실적을 거뒀다.

당시로서는 세련된 디자인과 효율성 그리고 벤츠의 기술력이 투입됐다는 든든한 느낌은 이스타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게다가 90년대 중반 쌍용자동차는 상용차 분야 뿐 아니라 97년도에 고급 대형승용차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지면서 종합자동차 메이커로서 신뢰를 쌓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실용적이고 다양한 쓰임새와 굳건한 엔지니어링이라는 두 가지 무기는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쌍용차의 빛나는 유산으로 남아있다.

김경수 기자

kks@encar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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